국내 의원급 의료기관이 3만 7천 개를 넘어서며 1차 의료 시장이 유례없는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진료의 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준화되면서 이제 환자들은 단순히 병원의 치료 결과뿐만 아니라 병원을 선택하고 재방문하는 전 과정에서의 ‘경험’을 핵심 지표로 삼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일선 병·의원 현장에서는 예약 자동화, 알림 메시지 발송, AI 챗봇 등 다양한 디지털 솔루션 도입이 줄을 잇고 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는 기술 도입 자체가 곧장 병원 경영의 효율화나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기술이 현장 업무 구조에 녹아들지 못한 채 겉도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 경험 기반 CRM 솔루션 ‘리비짓(Re:Visit)’을 전개하는 모션랩스는 해당 문제의 원인을 AI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찾는다. 단순히 업무를 대신해주는 ‘자동화 도구’를 넘어, 환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경영 전략의 근거로 전환하는 것이 AI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헬스케어 역시 그간 의료 분야 AI 도입에 대해 비슷한 지적을 내놓은 바 있다. 기술을 기존 프로세스 위에 덧칠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업무 방식 전반의 재설계와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AI의 실질적인 효용이 발생한다고 강조해 왔다.
모션랩스 이우진 대표는 “병원에서 AI는 단순한 반복 업무 대행자가 아니라, 파편화된 환자 경험 데이터를 해석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대표는 이어 “단순히 AI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서 환자 경험이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그 소통 과정에서 어떤 유의미한 데이터가 쌓이며, 그 데이터가 실제 병원 운영과 경영 판단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모션랩스는 약 500만 건 이상의 환자 커뮤니케이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유료로 솔루션을 도입한 병원 수만 해도 이미 400개소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동네 의원을 넘어 대형 대학병원급 의료기관까지 영역을 넓히며 복잡한 의료 환경 속에서 환자 경험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해석하는 실전 사례를 늘려가는 중이다.
모션랩스 측 분석에 따르면 시중에 나온 다수의 병원 AI 솔루션이 기능 제공 그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반응, 재방문 패턴, 대화 맥락 등 중요한 정보들이 구조화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데이터가 흩어지니 AI를 도입해도 경영 개선 효과가 체감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국내 1차 의원 시장은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데이터 기반의 경영 인프라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하며 “AI의 진짜 역할은 의사를 대신해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경험이라는 비정형 데이터를 병원이 이해할 수 있는 ‘경영의 언어’로 치환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모션랩스는 향후 병원과 환자가 소통하는 모든 경로를 데이터화하고, 이를 병원 운영 전략과 직접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눈앞의 자동화 효율에 치중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병원 경영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데이터 구조를 확립하겠다는 포부다.
전통적인 대면 진료 중심의 병원 시장이 데이터와 AI를 만나 어떻게 진화할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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