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광주FC의 최경록은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선수다.
최경록은 독일 2부 장크트파울리에서 깜짝 등장한 뒤 카를스루어로 이적한 뒤까지 경쟁력을 보였던 선수다. 몇 차례 큰 부상을 당해 경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학 시절 은사인 이정효 감독의 제안을 받고 광주FC에 합류했다. 요즘 수원삼성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정효 페로몬’의 원조격인 선수였다.
이 감독이 광주를 떠나면서, 최경록의 K리그 도전 1챕터가 2년 만에 일단락됐다. 새 시즌을 기다리는 최경록과 만나 지난 2년을 돌아봤다. 최경록의 광주 이야기와 독일 시절 이야기를 두 편에 나눠 전한다.
- 광주의 이정효 에라(era)가 4년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최경록 선수는 애제자로서 영입돼 그 중 2년을 함께 했어요.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사실 큰 부상으로 인해 병역 면제를 받아서 상무 생각도 없었고요. 그런데 광주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이정효 감독님이었죠. 아주대 은사였던 감독님과 독일에서도 늘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골 소식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고, 명절엔 제가 연락을 드렸고요. 그러다 광주 감독이 되신 뒤 연락을 더 자주 주시더라고요? 그때까지도 별로 의식을 안 했는데 제안을 주셨을 때 여러모로 한국에 올 상황이 맞아떨어졌어요.
- 2015년 프로 데뷔해 2023년까지 주로 독일 2부에서 뛰었어요. 독일 2부와 한국 1부의 차이를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광주에만 있다 보니까 제가 K리그 전체를 말하기엔 어려워요. 그리고 광주는 시설과 환경이 열악한 걸로 유명하잖아요. 웨이트장도 훈련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죠. 그것도 이정효 감독님이 구단에 많이 요구하신 걸로 아는데, 체력단련 기구도 새 걸로 바뀌고 구장 사정도 나아졌죠. 물론 다른 팀에서는 당연한 것들이지만요. 처음엔 환경에 대해 좀 놀랐는데, 갈수록 감독님과 구단이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 상대 밀집수비는 어땠나요? 최경록 선수가 왔을 때 이미 광주는 굉장히 경계를 받는 팀이었고, 더 선수구성이 화려한 팀도 광주 상대로는 일단 내려서서 경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맞아요. 제가 왔을 때 이미 상대팀들이 다 내려서서 수비할 때라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전 시즌 K리그1에서 승격팀 돌풍을 일으킬 때 상대팀들이 ‘광주 너희들이 뭔데’라는 느낌으로 압박을 많이 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광주가 상대 압박을 풀어가면서 계속 골을 넣으니까, 후반기부터 상대팀들이 내려섰다고 들었어요. 제가 광주에 왔을 땐 더 심했죠. 감독님이 경기마다 제일 상기시키신 부분도 상대가 안 나온다는 거였어요.
- 독일은 약팀일지라도 웅크리지 않는 분위기로 알고 있는데, 매 경기 내려선 상대를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겠네요.
네. 일단 리그 경기에서는 상대가 더 강하다고 해도 웅크리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요. 독일에 DFB(독일축구협회) 포칼이란 대회에서 4부나 5부 팀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그런 팀들이 내려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소위 버스를 세운다고 할 정도의 팀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좋게 생각합니다. 광주가 워낙 강하니까 그랬겠죠.
- 최경록의 광주행이 발표됐을 때 다들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 뛸 걸 예상했는데, 오히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시작했어요. 정호연 선수와 둘이 비교적 왜소한 중원 조합을 이뤘는데 잘 작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8번(중앙 미드필더)도 괜찮고요. 2선에서는 사이드를 비롯해 모든 자리가 다 좋아요. 그 중에서도 제일 자신 있는 건 사실 10번(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이죠. 하지만 감독님이 팀을 구성하실 때 조합을 맞추다 보니 제가 후방으로 내려가게 됐던 것 같아요. 광주에 오기 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한 적이 없어요. 팀이 4-4-2를 쓴다면 전 수비시 공격수, 공격시 10번 역할을 하는 선수였죠. 그런데 광주에서 맡기신 6번(수비형 미드필더)도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뒤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나름대로 잘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광주에서 시작만 6번이었고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는데요.
4-3-3에서 가운데 두 명, 그러니까 8번 자리도 섰고요. 오른쪽 측면, 왼쪽 측면도 선 적이 있었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명 쓸 때는 6번도 해 봤고요. 그러니까 2선과 3선의 모든 위치는 다 소화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10번이나 8번 역할을 하다가 수비시에는 원톱 옆까지 올라가서 4-4-2나 5-3-2 수비 대형으로 변환할 때도 있었죠.
- 2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뭔가요?
딱 두 경기가 생각나는데요. 제 데뷔전에서 서울을 잡은 것.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 알힐랄전. 특히 알힐랄을 상대한 건 많은 걸 느낀 경험이었어요. 아쉽기도 하고요. 슬프다는 감정은 경기에서 처음 느꼈어요.
- 경기를 뛰면서 슬픔까지 느꼈다니, 왜 그랬을까요?
슬펐던 건 경기를 하면서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요. 전 외국 생활을 오래 했고, 유럽 빅 리그 1부 진출을 목표로 도전하던 선수였는데요. 알힐랄은 그 빅 리그에서 스타였던 선수들이 주축이잖아요. 사실 맞붙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해 보니까 많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플레이가 그들에게는 평상시 아무 생각 안 해도 자동으로 나오는 플레이였어요. 그 차이를 느꼈을 때 조금 슬펐어요. 사실 독일 2부 팀에 있을 때도 컵대회에서는 1부 강팀 레버쿠젠도 이겨 봤고, 못 넘을 산이란 없었거든요. 이번 경기는 그 이상의 격차를 느끼게 했죠. 그래서 제 상담을 많이 해 주는 형(축구선수 출신 최강민)에게 전화해서 심경을 털어놓았어요. 형이 좀 걱정했죠. 동생이 경기 끝나자마자 전화해서 슬프다고 하니까.
- 사실 광주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진 건 아니었어요. 세트피스 실점과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서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죠.
맞아요. 국제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지, 얼었던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알힐랄전을 앞두고 흐름도 좋았고 준비도 잘 했어요. 그런데 세트피스에서 너무 압도적인 제공권에 실점을 하니까 맥이 빠지면서 준비한 게 다 꼬였어요. 세트피스 수비 전술도 잘 준비했는데 장신 선수(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에게 쉽게 실점하는 바람에.
- 그렇게 이정효 감독과의 인상적이었던 2년 동행은 마무리됐습니다.
감독님은 전혀 걱정이 안 돼요. 어디에 가시든 잘 하실 거니까요. 다만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잘 하셨는데도 만족 못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부분까지도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분입니다. 내년엔 저와 다른 리그에 속하실 텐데, 응원하겠습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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