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한국 속 독일'을 만나는 남해바래길 7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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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한국 속 독일'을 만나는 남해바래길 7코스

연합뉴스 2026-01-02 08:00: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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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창의' 서사 가득한 독일마을

독일마을 전경 [사진/임헌정 기자]

독일마을 전경 [사진/임헌정 기자]

(남해=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바래'는 어머니들이 갯벌에서 조개,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캐던 노동을 일컫는 남해 토속어이다.

엄마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걸었던 '남해바래길' 위에서 산, 바다, 다랑논, 죽방렴, 그리고 순박한 인정을 만난다.

◇ 바래길 7코스 화전별곡길

걷기의 보편화는 강릉 바우길, 부산 갈맷길 등 브랜드화된 도보여행 길을 등장시켰다.

'꽃밭' '보물섬' 등으로 불리는 남해 섬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인 남해바래길도 그중 하나다. 총 263㎞, 27개 코스에 이른다.

이 중 7코스인 화전별곡길은 경상남도 남해군 대표 관광 명소로 꼽히는 독일마을을 지난다.

조선 초 남해에 유배돼 왔던 문신 김구(1488∼1534)가 남해를 화전(花田, 꽃밭)이라고 예찬한 데서 길 이름이 유래했다.

화전별곡길은 물건마을에서 시작해 독일마을을 지나 원예예술촌, 봉화, 내산, 바람흔적미술관, 남해힐링숲타운,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 천하마을로 이어진다. 거리는 약 17㎞이다.

전 구간을 걷기 어렵다면 물건마을에서 편백자연휴양림까지만 걸어도 좋을 듯하다.

가을이면 맥주축제가 열리는 독일마을 광장 [사진/임헌정 기자]

가을이면 맥주축제가 열리는 독일마을 광장 [사진/임헌정 기자]

이 구간만도 약 10㎞에 이른다.

곳곳의 볼거리로 인해 남해의 자연, 문화,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휴양림 편백숲 임도를 따로 찾는 '뚜벅이'도 적지 않다.

화전별곡길의 출발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00여년 역사의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다.

방조림은 바닷물이 넘치는 것을 막아 농지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공 숲이다. 어부림은 물고기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부르는' 숲이다.

이 숲은 바다에 그늘을 드리우는데, 그늘을 플랑크톤 무리로 오인한 물고기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물건리 숲은 방조림과 어부림의 역할을 모두 해 방조어부림으로 불린다.

17세기에 조성됐다. 숲의 길이는 750m, 너비는 40m, 나무들의 높이는 10∼15m이다.

남해에는 침엽수가 많은데 방조어부림에는 낙엽활엽수인 팽나무, 푸조나무, 참느릅나무, 말채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와 상록수인 후박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숲은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2006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에서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물건리 방조어부림 [사진/임헌정 기자]

물건리 방조어부림 [사진/임헌정 기자]

◇ '용기'와 '창의'의 서사가 흐르는 독일마을

'한국 속 독일'이란 어떤 곳일까. 남해독일마을에는 몇 가지 특별함이 있다.

우선 1960∼19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해 독일 문화를 유지하며 실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가 성공시킨 해외 교포 이주 사업의 드문 사례라는 점이다.

셋째 물건방조어부림과 새파란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넷째 교포 이주 사업이 관광업과 연결돼 이국적인 레스토랑, 카페, 민박 등이 성업 중이라는 점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본격 실시 이후 선출된 김두관 초대 민선 군수는 외국에서 무엇이든 배워 오라며 무작정 공무원들에게 해외 배낭여행을 시킨다.

독일로 간 팀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로부터 귀국해 고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 이를 보고한다.

이것이 파독 근로자 귀국 정착 사업의 시작이었다.

남해군은 10여 차례 독일을 방문,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어 수십 명으로부터 투자 의향을 받아냈다.

파독전시관 내부 [사진/임헌정 기자]

파독전시관 내부 [사진/임헌정 기자]

교민들은 남해 곳곳을 돌아본 뒤 물건리 바다가 보이는 다랑논 지형의 언덕을 새 삶의 터전으로 직접 선택했고 남해군은 택지 조성 후 땅을 분양했다.

교민들은 독일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들여와 전통 독일 양식으로 집을 짓고 독일에서 영위했던 생활 양식과 문화를 이어갔다.

오랫동안 살았던 독일을 새 터에서도 느끼기 위해서였다.

2002년 독일마을이 문을 열었을 때 이곳으로 이주한 독일 교민은 30여 세대였다.

여기에는 한국인 간호사와 결혼한 독일 남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은 일부가 고령으로 별세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해 20여 세대가 남아 있다.

2013년부터는 독일 교민이 아닌 일반인의 입주도 가능해졌다.

독일마을은 주말마다 남해의 따뜻한 햇살과 이국적 풍광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 마을의 맥주 축제는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를 본뜬 행사로, 매년 가을 '도이처플라츠'(독일광장)에서 열린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남해군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 글뤽 아우프(Gluck Auf, 살아서 돌아오라)!

광장에 있는 파독 전시관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8천㎞ 떨어진 낯선 땅에서 감내해야 했던 삶과 애환,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그들이 남해 독일마을에서 연 '인생 2막'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시관에 설치된, 지하 1천200m 깊이까지 내려가는 탄광 갱도 모형 옆의 스피커에서는 '글뤽 아우프'(Gluck Auf)라는 외침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라'라는 뜻이다.

1960년대 태국,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이 각각 220달러, 170달러였을 때 한국은 76달러였다.

파독전시관 전시물 [사진/임헌정 기자]

파독전시관 전시물 [사진/임헌정 기자]

1963년 8월, 서독 루르 광업소에서 일할 광부 500명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에 온 나라가 술렁였다.

월급은 600마르크. 한국 직장인 평균 월급의 10배였다. 지원자는 4천600여명, 경쟁률은 92대1이었다.

이렇게 해서 7천936명의 광부가 독일로 건너갔다.

석탄 가루와 30도 이상의 지열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탄광에서 한국 청년 7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966년부터는 간호사도 파견됐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1억153만달러로 한국에서 고속도로, 공장 등을 짓는 데 기여했고, 한국은 독일 '라인강의 기적'에 견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 피톤치드 풍부한 편백 휴양림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울창한 편백 숲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해 본섬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 섬 속의 육지라는 내산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휴양림 산자락에는 피톤치드 발산량이 많은 편백, 소나무와 함께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피톤치드는 숲속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 물질을 통틀어 지칭한다.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건강하게 만든다.

남해힐링숲타운 [사진/임헌정 기자]

남해힐링숲타운 [사진/임헌정 기자]

이 휴양림은 남해군에서 단풍이 화려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

독일마을에서 휴양림으로 가는 길 중간에 바람흔적미술관과 남해힐링숲타운을 만날 수 있다.

내산저수지 변에 있는 바람흔적미술관은 예술 작품 감상은 물론 저수지를 바라보며 넋 놓고 물 구경하기 좋은 곳이었다.

남해힐링숲타운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비생태공원이었다.

숲의 치유 효과에 대해 높아지는 대중 관심을 반영해 힐링숲타운으로 리모델링했다.

나비 생태관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어 나비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와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알이 애벌레, 번데기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되어 날 수 있는 확률은 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도 남해힐링숲타운에서 볼 수 있는 나비 [사진/임헌정 기자]

겨울에도 남해힐링숲타운에서 볼 수 있는 나비 [사진/임헌정 기자]

나비는 1만6천800여종이 전 세계에 분포돼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한반도 서식 나비는 남북한을 합해 264종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꿀벌과 마찬가지로 나비 개체 수도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벌, 나비 감소로 인해 식물이 수분을 하지 못하면 식물 종과 개체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만드는 주체는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다. 식물은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막대한 양의 전분을 만든다.

식물이 감소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저 이론이나 가설에 지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죽방렴 멸치잡이

남해 지족해협의 창선교와 죽방렴 [사진/임헌정 기자]

남해 지족해협의 창선교와 죽방렴 [사진/임헌정 기자]

죽방렴은 대나무로 만든 발, 그물이라는 뜻이다.

남해 특산품 중 하나는 죽방렴 멸치, 즉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이다.

죽방렴 어업은 남해 지족해협의 거센 물살을 이용한 전통 어로 방식이다.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부른다.

좁은 물목에 참나무 지지대 300여개를 갯벌 속에 박고 대나무 발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과 거꾸로 해서 V자 모양으로 벌려 둔다.

밀물 때 물살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방렴의 원형 임통에 가두어지면 잡아들인다.

죽방렴에 포획되는 어류는 갈치, 삼치 등 다양하지만 멸치가 주종이다.

죽방렴 멸치는 사람이 뜰채로 잡아 올리기 때문에 비늘이나 몸체의 손상이 거의 없다.

또 잡은 후 바로 삶아 말리기 때문에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죽방렴 관람대 [사진/임헌정 기자]

죽방렴 관람대 [사진/임헌정 기자]

죽방렴 어업은 15세기부터 이어져 왔으며 독특한 바다 환경, 역사적 배경, 문화 활동 등과 연계돼 현재까지 지속 발전했다.

해수부는 2015년 죽방렴어업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남해 지족해협에는 현재 총 23개의 죽방렴이 있다.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어업은 2025년 11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죽방멸치길은 바래길6코스로, 7코스 화전별곡길과 이어진다.

지족해협은 화전별곡길에서 멀지 않다.

청정 바다의 죽방렴 현장을 찾아보길 권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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