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대는 거부한다”…쿠란 위에 손 얹은 맘다니, 뉴욕의 새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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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대는 거부한다”…쿠란 위에 손 얹은 맘다니, 뉴욕의 새 실험

이데일리 2026-01-02 07:39: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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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1일(현지시간) 새해가 막 시작된 시간, 맨해튼 시청 지하의 오래된 폐쇄 지하철역.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플랫폼 위에서 뉴욕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명이 비친 그곳에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은 성경 대신 이슬람 경전 ‘쿠란’ 위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미국 최대 도시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 남아시아계이자 아프리카 출생 최초의 뉴욕시장. 그리고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34세의 주의원 출신 정치인이었다.

맘다니의 취임은 형식부터 달랐다. 관례적인 시청 계단 대신, 뉴욕의 과거를 상징하는 폐쇄된 지하철역을 택했다. 도시의 그늘과 노동, 그리고 방치된 공간 위에서 시작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의 곁에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과 아내 라마 두와지가 함께했다.

몇 시간 뒤, 맘다니는 공개 취임식을 위해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선서를 했고, 이번엔 미국 내 진보 세력의 상징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를 주재했다. 샌더스는 맘다니가 정치적으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꼽아온 존재다. 혹한의 1월 바람 속에서도 시민들은 시청 바로 남쪽인 브로드웨이 ‘영웅의 협곡’(Canyon of Heroes)에도 모여 그의 취임을 축하했다. 이 곳은 역사적 인물과 국가적 성취를 기리는 공간이지만, 맘다니는 보다 많은 시민이 취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블록 파티 형식의 행사를 공식 일정에 포함시켰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1일(현지시간) 뉴욕시청에서 버니 샌더스(버몬트주·무소속) 상원의원으로부터 뉴욕시 제112대 시장으로 공식 취임 선서를 받은 뒤 연설하고 있다.


◇큰정부 내세운 맘다니 “대담하고 포괄적 시정 운영하겠다”

연설은 ‘새 시대’라는 선언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맘다니가 가장 강하게 부정한 것은 따로 있었다. “기대치를 낮추라”는 조언이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적게 요구하고 더 적기 기대하라고 말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내가 리셋하고 싶은 유일한 것은 ‘작은 기대’”라며 “오늘부터 우리는 대담하고 포괄적으로 시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성공하지는 못할지라도, 시도할 용기가 없었다는 비난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언어는 조심스럽기보다 정면 돌파에 가까웠다.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는 통념을 공개적으로 반박했고, 정부가 다시 시민의 삶을 끌어올리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에 군중은 환호했다. 맘다니는 원칙을 숨기지 않았다.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뉴욕 정치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논쟁적인 선언이다.

이날 취임식은 맘다니 개인의 무대이자, 미국 진보 정치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연단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이 개회인사를 위해 먼저 올랐다. 그는 “두려움보다 용기를, 소수의 전리품보다 다수의 번영을 선택했다”며 “노동계층의 삶을 가능함을 넘어 ‘열망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시장”이라고 소개했다.

샌더스는 보다 직설적이었다. “부유층에 세금을 더 걷어 모두가 감당 가능한 주거 환경에서 살게 하는 것이 급진적이라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부유층과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해 작동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 두 인물은 단순한 축사가 아니라 맘다니 정치의 좌표를 분명히 했다. ‘생활비 부담 완화’, ‘경제적 권리’, ‘정부의 책임’. 이는 그가 내건 핵심 키워드이자, 2016년 샌더스 대선 캠페인에서 시작된 흐름의 연장선이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1일(현지시간) 뉴욕시 구 시청 지하철역에서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왼쪽) 주재로 뉴욕시 제112대 시장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부인 라마 두와지가 쿠란을 들고 있다. (사진=AFP)


◇무상버스, 임대료 동결…공약은 크고, 계산서는 무겁다

그는 “나는 민주사회주의자로 선출됐고, 민주사회주의자로 통치할 것이다”고 다시 밝혔다. 그러면서 “급진적이라고 여겨질까 두려워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부끄러움이나 불안함 없이 시정을 펼치고,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그가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것은 적지 않다. 무상 보육, 무상 버스, 약 100만 가구 대상 임대료 동결, 시가 운영하는 공공 식료품점 시범 도입. 모두 뉴욕의 고질적인 ‘비싼 삶’을 정면으로 겨냥한 공약들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연간 약 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맘다니는 부유층 증세와 법인세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뉴욕시는 주정부 권한 아래 놓인 ‘준(準)주권 도시’다. 뉴욕주 정부와 의회의 입법 없이는 실현이 어렵다. 특히 재선을 앞둔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의 결정은 그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연방정부와의 관계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며 연방 지원금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두 사람이 주택 공급 확대를 두고 비교적 우호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은, 정치가 언제든 현실과 타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맘다니는 출범과 동시에 논란도 안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 비판 발언으로 일부 유대계 시민들의 불안을 샀고, 인수 과정에서는 인사 검증 실패 논란도 불거졌다. 그는 제시카 티시 경찰국장를 유임시키며 치안 연속성과 갈등 완화 신호를 보냈지만, 뉴욕시장의 평가는 결국 말이 아닌 결과로 내려진다.

뉴욕은 전통적으로 쓰레기 수거, 지하철 지연, 포트홀, 범죄 통계로 시장을 판단하는 도시다. 전임 에릭 애덤스 시장은 살인·총격 사건 감소라는 숫자를 남기고 물러났다. 맘다니의 ‘새 시대’가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상징은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

취임 연설의 마지막 문장은 짧았다. “일은 이제 막 시작됐다.” 그 말은 다짐이자 경고처럼 들렸다. 맘다니는 퀸즈 애스토리아의 임대료 규제 아파트를 떠나, 1799년에 지어진 공식 시장 관저인 그레이시 맨션으로 들어간다. 전임 시장은 그곳에 유령이 있다며 농담을 남겼다. “도시에 옳은 일을 하면 (유령이) 우호적일 것이다.”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이 1일(현지시간) 뉴욕시청에서 제112대 시장 선서를 한 뒤, 아내 라마 두와지와 함께 무대에 섰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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