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경비의 새벽순찰 동행…화재 예방·환자 보고도 '척척'[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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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경비의 새벽순찰 동행…화재 예방·환자 보고도 '척척'[르포]

이데일리 2026-01-02 05: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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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경기)=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2025년 12월 29일 새벽 0시 20분. ‘기아 오토랜드 광명’ 2조 근무자들이 야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하나 둘씩 퇴근할 채비를 했다. 새벽 1시가 되고 인기척이 사라지자 오토랜드 내 전기차 전용 공장 ‘EVO 플랜트’에서 ‘또각 또각’ 발굽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족 로봇 ‘스팟’이 아무도 없는 공장을 순찰하기 위해 자신만의 하루를 시작했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에서 새벽 순찰을 하고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사족로봇 ‘스팟’이 열화상 감지센서 불을 켜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의 사족로봇 ‘스팟’이 기아 ‘EV4’ 완성차 주변을 순찰 중이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지난달 29일 광명시 소하동 소재 기아(000270) 오토랜드 광명을 찾았다. 이곳은 상징적인 도로명 주소(광명시 기아로 113)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기아의 전신 기아산업이 1973년 준공한 국내 1호 종합 자동차 생산공장이다. 최초 후륜구동 승용차 ‘브리사’를 비롯해 봉고, 프라이드 등 기아의 역사적인 모델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현대차그룹은 ‘피지컬 인공지능(AI)’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지난 2022년 국내 최초로 광명 EVO 플랜트에 순찰 로봇을 들였다. 2021년 약 1조원을 투자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을 산업 현장에 처음 적용했다. ‘국내 1호 종합 자동차 공장’ 내 ‘현대차그룹 1호 전기차 전용 공장’이 ‘국내 1호 순찰로봇 도입 공장’이 된 셈이다. 스팟은 이후 여러 차례 업데이트를 거쳐 4년 동안 기아 광명, 화성, 광주 공장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EVO 플랜트 차체공장 출입구 쪽에 ‘스팟 스테이’라는 높이 50cm가량의 유리 박스가 있다. 스팟의 집이다. 이곳에서 충전하고 잠을 잔다. 새벽 1시가 조금 지나자 스팟 스테이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잠에서 깬 강아지처럼 능숙하게 일어선 스팟은 라이트를 켜고 주변을 살피며 조립공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영미권에서 ‘스팟(spot·점)’은 우리 식으로 ‘바둑이’, ‘점박이’ 같은 흔한 강아지 이름으로도 쓰인다. 스팟의 걸음 속도는 사람과 비슷한 약 시속 4km/h정도였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 내 ‘스팟 스테이’에서 스스로 새벽 순찰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스팟’ (영상=정병묵 기자)


EVO안전팀에서 스팟 순찰을 담당하는 김새종 매니저는 “제가 스팟을 깨운 게 아니라 1시에 일어나도록 입력해 놓았고 그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저도 이 시간엔 원래 집에서 쉬고 있다. 스팟의 모든 순찰 과정은 끝까지 완전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스팟은 새벽 1시와 3시 각각 30~40분가량 두 차례 순찰한다.

최근 화제가 된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화려한 댄스를 췄던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스팟은 몸과 다리가 기본 ‘플랫폼’이고 용도에 맞게 장치를 그 위에 얹는다. 공장에서의 임무는 쓰러져 있는 인물 발견, 화재·유증기 감지 같은 안전 순찰이기 때문에 ‘머리’ 부분에 열화상 카메라를, 등에는 라이다(LiDAR), 연산용 PC, 5G 통신모듈, 센서 팩 등을 짊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구역에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스팟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터미네이터’ 같은 SF 영화에서 봤던 로봇에 대한 경외감과 약간의 두려움까지 동시에 몰려왔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에서 ‘EV4’ 등 완성차 주변을 순찰하는 ‘스팟’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를 순찰 중인 ‘스팟’ (영상=정병묵 기자)


조립공장에 다다르니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사람이 모두 퇴근해 출입문이 잠긴 상태인데 도어 제어용 사물인터넷 센서를 통해 스스로 문을 연 것이다. 기아 전기차 ‘EV3’, ‘EV4’ 완제품이 도장을 기다리고 있는 ‘파이널 1’라인에서 한참 주위를 살피며 걷던 로봇개는 갑자기 멈춰 서며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김 매니저는 “스팟이 지금 바라보는 곳이 부동액을 주입하는 설비인데 화재 위험이 있는 곳”이라며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온도를 감지해 이상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량이나 결함을 수정하는 ‘통합 수정장’으로 향한 스팟은 또 차량 문 사이에 끼워 방한 용도로 쓰이는 ‘웨더 스트립(Weather Strip)’, 일명 ‘웨자’ 보관함 앞에서 멈춰 섰다. 웨더 스트립은 온도에 따라 변형이 발생할 수 있어 적정 수준으로 보온해야 한다. 약한 열에도 화재가 발생하는지 꼼꼼히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통합 수정장 내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도 아주 능숙했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내 계단을 오르내리는 스팟 (영상=정병묵 기자)


생산 직원이 모두 퇴근한 시간이니 응급환자 발생 상황을 연출해 봤다. EVO안전팀 직원이 스팟의 진행 예상 방향에서 미리 바닥에 누웠다. 스팟은 직원을 잠시 바라보더니, 슥 피해서 지나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담당자의 스마트폰에는 누워 있는 사람 형체의 사진과 함께 ‘응급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발생 위치도 표시됐다. 사진기자가 스팟의 순찰을 포착하기 위해 바닥에 앉거나 엎드려 있어도 ‘응급 환자 발생’ 메시지가 관리자 스마트폰에 수시로 떴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에서 새벽 순찰을 돌다 ‘응급환자’를 발견한 스팟(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기아 오토랜드 광명 안전 담당자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된 응급환자 발생 관련 정보(사진=기아 오토랜드 광명)


이 모든 정보는 중앙관제소와 방재실로 전달되고 이상 상황 시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이 간다. 약 40여분 동안 순찰을 마친 스팟은 다시 왔던 경로로 돌아와 스팟 스테이에 스스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스팟의 뒤를 쫓아다닌 기자 스마트폰의 만보계를 보니 약 4000걸음이 찍혀 있었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에서 새벽 순찰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스팟 (영상=정병묵 기자)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차체 공장에서 ‘스팟’이 차체 품질 검사를 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2025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방한, 그리고 정의선 회장 등과 ‘깐부 회동’을 계기로 산업계의 화두가 된 피지컬 AI는 이미 현대차그룹에는 일상의 풍경이다. 실제 지난 3월 준공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진일보한 피지컬 AI를 실현한 공장이다. 스팟은 여기에서 차체 품질 검사 역할도 맡고 있다. 이 밖에 비전 카메라를 장착한 자율비행 드론이 물류센터를 돌며 부품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자율주행 운반로봇(AGV)이 실어 나른 완성차 1대분의 부품을 차량 제조 컨베이어에 연결해 다차종 유연 생산을 구현한다.

순찰에 동행한 기아 EVO안전팀 정영우 매니저는 “스팟 도입 후 옥내외 위험물 저장소나 화재폭발 취약 지역 순찰을 통해 오토랜드 광명의 안전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공장 ‘EVO 플랜트’를 순찰 중인 ‘스팟’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한편 이번 현장은 취재기자들에게도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람을 동행 취재하면 중간 중간 멈춰 대화를 나누거나 포즈를 요구할 수 있다. 로봇에게는 그런 부탁을 할 수가 없다. 정해진 길을 가는 듯하다 스스로 판단하고 멈췄다 움직이기 때문에 기자와 현장 스태프 모두 바삐 뒤를 쫓다 멈추고 걷고의 반복이었다. 사진기자는 스팟의 예상 동선보다 먼저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가 다른 경로로 꺾자 머쓱해지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2025년이 저물어 가는 새벽, 국내 전기차 생산 최전선에서 로봇의 노동을 쫓으며 아침을 맞으니 새로운 시대가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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