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30주기…'서른 즈음에' 강승원 "광석이 밝고 귀엽고 친화력 넘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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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30주기…'서른 즈음에' 강승원 "광석이 밝고 귀엽고 친화력 넘쳤죠"

모두서치 2026-01-01 11:53: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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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뉴시스

 

가객(歌客) 김광석(1964~1996)의 30주기는, 우리 대중음악계의 잃어버린 30년이기도 하다. "슈퍼스타 김광석이 살아 있었으면 우리 음악계가 달라졌을 것"(성시경)이라는 말처럼, 국내 음악 신(scene)의 다양성 부족은 김광석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하지만 부재는 존재의 실재를 증험케 한다. 김광석의 선후배, 동료 그리고 그의 팬들은 매년 고인의 기일(1월6일)을 기점으로, 그가 짓거나 불렀던 노래를 다시 기억한다. 이를 통해 고인을 그리워하고 노래 정신을 기린다.

"무엇보다 목소리.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고 감성적으로도 이 울림을 거부하기 어렵다"(김학선 대중음악 평론가), "노찾사와 동물원을 거쳐 솔로로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민중가요와 포크의 접점을 잇고 그사이 전설로 남은 학전소극장 1000회 공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중에 어느 하나 허튼 구석이 없다"(정일서 KBS 라디오 PD), "음악 속 '노랫말'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감정의 정화를 통한 현실 속 삶의 회복'을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 '가인(歌人)'의 덕목임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줬다"(김성환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김광석만큼 친숙하고 동시에 영원히 청청한 포크 음악가를 다시 만나기 어렵다"(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같은 반응을 음악 전문가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도 김광석의 힘이다.

특히 올해는 30주기를 맞아 추모의 장(場)을 넓혔다. 김광석추모사업회는 오는 4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옛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사업회 회장인 음악감독 겸 싱어송라이터 강승원을 비롯 동물원, 박학기, 유리상자, 알리와 역대 경연대회 출신 뮤지션인 빨간의자, 배영경, 김영소가 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연다. 6일 오후 7시 같은 곳에선 차세대 김광석을 발굴하는 경연대회 '2026 광석이 다시 만나기'를 펼친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김광석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 1000회 이상 공연한 곳이다. 2008년 학전블루 소극장 마당에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졌다. 작년 3월 폐관 이후에도 김광석을 추억하는 추모사업회 가수들과 새로운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이 상징적 공간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김광석추모사업회는 1996년 2월 김광석의 49재 추모 콘서트(연세대 대강당) 참가자 40여 팀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999년 '다시 만나기'와 2008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추모 콘서트(학전블루 소극장) 이후, 2012년부터 '김광석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를 통해 음악만을 위해 살았던 김광석의 뜻을 기리며 신진 음악인 발굴·양성에 힘써왔다.

그간 '포크 대부' 김민기(1951~2024)가 추모사업회 회장과 '김광석 노래상' 심사위원장을 맡아왔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김광석의 대표곡 '서른 즈음에' 작곡가 강승원이 직을 이어 받았다. 김광석과 절친했던 강승원은 고인에 대해 "귀엽고 밝았다"고 기억했다.

고교 때부터 작곡을 해온 강승원은 우리 대중음악계 다양성의 한 축이다. 1991년 김민기가 이끄는 극단 학전의 기획공연이자 음악 토크쇼였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함께 했다. 이 음악 토크쇼가 이듬해 KBS로 옮겨졌고, 강승원은 당시 생소하던 TV 음악감독이 됐다. 1994년 4월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마지막 방송에서 자신이 만든 '서른 즈음에'를 불렀고 김광석이 그 곡을 달라고 청해 줬다. 같은 해 김광석의 정규 음반에 이 곡이 실렸다. 그 해 말 강승원도 '우리동네 사람들'이란 그룹을 만들어 이 곡을 발표했다.

이후 강승원은 가수가 아닌 음악감독 일에 충실했다.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리고 현재 '더 시즌즈' 시리즈까지 KBS를 대표하는 토크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을 맡아 왔고 지금도 담당하고 있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강승원 1집'을 발매한 건 예순살을 목전에 둔 지난 2017년. 이 음반 역시 작사·작곡은 본인이 전부했다.

강승원은 여전히 젊은 세대와 복잡하고 섬세하게 소통하고 있다. 백만년 청춘의 노래로 불릴 '서른 즈음에', 말이 없어도 통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그 '초코파이' CM송 맞다) 같은 노래들은 심리 서술의 권한을 창작가가 아닌 청자가 갖게 한다. 아이유, 수지 같은 젊은 스타 가수들이 앞다퉈 강승원의 노래를 피처링하는 이유다.

다음은 지난 29일 서울 대학로 카페 학림에서 강승원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학림은 학전 식구들의 여전한 아지트다. 강승원은 꾸밈 없지만 진심이 가득한 담백한 말들을 들려줬고 거기엔 김광석, 김민기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벌써 광석 씨 30주기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확 갔어요. 시간이."

-소회는 어떠세요?

"멍해요. 벌써 30주기가 됐나… 20주기가 얼마 안 된 것 같거든요."

-멍하다는 표현이 참 딱 맞네요. 연초가 되면 광석 씨가 먼저 생각나시죠?

"연초 되면 당연히 광석이도 생각이 나지만 학전에서 민기 형 중심으로 선후배들이 모이니까 신년회하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민기 형 돌아가시고 이번이 두 번째 하는 건데 여전히 선후배들이 계속 모이네요. 광석이가 여전히 좋은 일 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 행사를 알리시면서 '30년이면 사람도 태어나 어른이 되는 시간인데, 크게 축하해줘야지'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거의 다 '십진법의 노예'로 살잖아요. 광석이가 떠난 지 '서른 즈음에'라는 생각도 있고… 사실 매년 조금씩 조금씩 잊혀 가잖아요. 30년이라는 숫자를 빌려서 다시 광석이를 더 리마인드 시키고 싶었습니다. (광석이에 대한 그리움의) 색깔이 옅어가는 속도를 줄이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날 성시경 씨 콘서트를 다녀 왔거든요.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부르시기 전 침체된 포크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김광석 씨 같은 슈퍼스타가 살아 있었으면 이 신이 달라졌을 거 같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동의해요. 왜냐하면 광석이는 이쪽 신의 선두 주자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없어져 뒤따르는 친구들을 끌어줄 사람이 없어졌으니까요. 광석이가 살아 있었으면 아마 신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 음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지금보다 더 많지 않았을까 해요. 광석이는 송창식 세대 이후에 처음 나온 스타인데 광석이가 계속 있었으면 분명히 재주 있는 친구들이 그쪽으로 몰려갔을 거예요. 시경이 말이 일리가 있어요. 근데 시경이도 그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친구죠."

-광석 씨 처음 보셨던 때가 기억나세요?

"아마 88년일 거예요. 83년에 광석이가 나를 봤다는데 그건 기억이 잘 안 나고요. 88년 동물원 공연 뒤풀이 가서 광석이를 알게 됐죠. 뒤풀이 장소가 신촌인가 종로 3가였나 했어요. 광석이는 조그맣고 귀여웠어요. 무슨 얘기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주변잡기에 대한 얘기였을 거예요."

-광석 씨를 직접 만나지 못한 대중이 생각하는 광석 씨에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요.

"광석이가 이야기를 조근조근 재밌게 잘해요. 공연할 때도 혼자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요. 되게 밝죠. 동시에 분개도 잘하고요. 에너지가 넘쳤어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죠."

-요즘 같은 시대에 더 생각나는 뮤지션이네요. '서른 즈음에'는 원래 선생님이 속한 '우리동네 사람들' 노래잖아요.

"광석이가 불러서 잘 됐잖아요. 세상에 알려지게 됐죠. 그게 광석이의 힘이었어요. 좋은 곡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거기다가 굉장히 붙임성도 있으니까 '형 이거 제가 한번 부를까요?'라고 하면 끝이죠. 광석이는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미국 록밴드 '위저'도 김광석 씨를 언급하며 '먼지가 되어'를 국내 페스티벌에서 불렀죠. 왜 많은 뮤지션들이 여전히 김광석 씨가 부른 노래들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선생님은 광석 씨가 부른 노래 중에서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우선 노래의 힘 같아요. 그 힘이 세니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는 거죠. 사실 광석이 살아 있을 때 광석이 노래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민기 형이랑도 '쟤 이상하게 노래한다'고 했죠. 근데 얘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들었는데 다 잘했더라고요. 제겐 마이클 잭슨도 그랬어요. 잭슨의 가창도 생전 당시엔 별로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 잘했더라고요. 광석이도 사람들에게 많이 선택되는 이유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어요."

-기존에 해오던 행사인데 이번엔 30주기를 맞아서 공연도 열고 규모가 더 커졌어요.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실 생각인가요?

"30주기라 그렇게 했는데, 계속 유지하고 싶지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요.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만들어가면서 해야 되는데 동료들이 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그 방법은 우리 쪽에서 연구해야죠."

 

-말씀하신 것처럼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포크 음악도 상업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브랜딩도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스타가 하나 나와야 되는데…"

-지금 경연대회는 그 방면에서 역할을 덜 할 수밖에 없는 생태계에 놓여 있는 거 같아요. 경연대회에 나온 가수들을 조명하는 언론 매체의 힘도 많이 약해졌고요. 그리고 사실 긴 호흡의 포크는 숏폼 시대에 알리기 정말 어려운 장르잖아요.

"그러니까 호흡이 긴 노래들이 점점 더 힘든 것 같아요. 복고를 찾는 친구들이랑 연결이 돼서 나가는 것 같긴 합니다."

-젊은 포크 듀오 '산만한 시선'(2000년생 송재원, 서림으로 구성된 팀) 같은 팀이 있죠.

"'더 시즌즈-박보검의 칸타빌레'에 나왔었어요. 요즘 시선으로 보면 별종 같은 친구들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노래가 알려지기 위해선 굉장한 운이 따라야 되는 것 같아요. 노래가 알려지는 메커니즘을 모르겠어요."

-사실 선생님이 김광석추모사업회 회장을 이어 받는다고 했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당연히 선생님밖에 하실 분이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자리를 맡는 걸 조심스러워하시잖아요. 그리고 항상 김민기 선생님처럼 '뒷것'이 되시기를 스스로 원하시고요. 다만 광석 씨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맡으신 걸로 지레짐작했습니다.

"나이가 제일 많아서 맡게 된 것 같은데… 광석이 대한 애정이 많았죠.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맡게 된 거 같아요.

-자리의 무게감이 느껴지시나요?

"무게감이 있죠. 광석이 그렇지만, 민기 형도 크고요. 그 다음에 동료 후배들 다 있으니까요."

-현재 사업회 운영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고민이 되세요?

"1년에 한 번 하는 행사가 제일 힘 쓰는 거고… 그 다음이 광석이 재단을 준비 중인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박)학기랑 광석이 형님인 광복 형이랑 잘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이 다양한데 어떤 부분은 중요하게 보고 계신가요.

"광석이를 좋아한 후배들이랑, 광석이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협업해서 한곡씩 부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각자 노래도 하지만 조인트 무대가 네 개가 됩니다. 연결이 포인트예요. 광석이랑 계속 연결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 '제3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 김광석상 수상자 산하 씨가 이번에 함께 하는 것도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거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처럼 계속 젊은 음악을 찾아드시는 분들도 드물잖아요.

"요즘은 많이 못 챙겨 들어요. TV 음악 프로그램을 계속 하고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씩 새로운 음악을 듣긴 하죠. 제가 요즘 음악 듣는 창구입니다."

-KBS 음악 프로그램 터줏대감이시잖아요. 음악감독을 오래 맡아서 숨어 있는 음악을 좀 더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셨어요.

"크게는 아니고… 젓가락 정도는 올린 거 같습니다."

-음악 흐름은 돌고 도니까 김광석 경연대회가 지속되면 언젠가 대형 스타가 나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게 제일 큰 제일 바람이에요. 언젠가 스타가 나올 거예요. 나오겠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스타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매력이 1번 아닐까요? 그 매력엔 그가 부르는 노래도 있을 테고, 그의 생각도 있을 테고, 그의 어떤 몸짓도 있을 텐데요. 그가 부르는 노래를 사람들이 많이 따라 부르면 스타 아니겠어요. 요즘 포크 신은 숏폼으로 콘텐츠를 나르는 친구들을 설득 못 한 거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힘이 없는 거겠죠.

-요즘처럼 자극적인 것들만 계속 되면 지쳐서 포크 음악을 찾는 때가 반드시 올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버텨야죠."

-개인적으로 선생님 솔로 앨범도 기다리고 있어요.

"마음속으로만 '내야지' 그러고 있어요. 이번엔 반주를 최소한으로 할 생각입니다. 제 목소리랑 기타 하나 혹은 피아노 하나 이렇게요. 여태껏 냈던 거는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 부탁해서 같이 했던 게 많으니까요."

-90년대 중반엔 보컬로 나서기도 하셨는데 2010년대 중반 솔로로 나서실 때까지 노래를 따로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광석이에요. 광석이 죽기 전까지는 공연도 하고 그랬는데, 광석이 죽고 나서 한 10년 정도를 안 했어요. 아무래도 저 역시 쇼크가 있었어요. 그 즈음에 광석이 말고도 제 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어요. 광석이 마저 세상을 떠나니까 그 해 봄엔 이파리가 안 날 것 같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해 되게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여러 해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 노래도 안 하고요.
 

 

-우문일 수도 있고 조심스럽지만 노래로 슬픔을 이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건가요?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 상황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발표는 안 했지만 집에서 흥얼흥얼 했을 겁니다."

-마흔을 넘어서부터 저 역시 주변의 죽음을 겪을 일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 세대는 그 수많은 죽음들을 어떻게 버티셨나요?

"지금은 더 많아요. 아직도 그 녀석(김광석) 죽었을 때가 임팩트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조동진 형, 김민기 형이 세상을 떠난 건 나의 과거에 어떤 뭉치가 이 만큼씩 툭툭 떨어져 나가는 거랑 같고요."

-그 죽음들이 받아들여지시나요?

"방법이 없잖아요."

-계속 죽음을 기억하고, 음악으로 무대로 고인을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람들이랑 같이 공유하자는 거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 같이 기억해 봅시다'라고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노래들이 있고 이걸 사람들한테 가슴 속에 이렇게 심어준 이들이 부른 노래니까, 오랜만에 우리 같이 한번 공유합시다라고요."

-그렇게 노래를 공유하면 어떤 일들이 생겨날까요?

"노래가 갖고 있는 제일 큰 힘 중 하나가 타임머신 역할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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