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매년 반복되지만 2025년은 특별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늘 똑같은 금연 혹은 다이어트 같은 뻔한 새해 계획들로 채워지지 않고, 추운 광장에서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잠 못 들었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아쉬운 점은 새 정부 출범 6개월의 정치적 긴장감이 다른 중요한 사항들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중의 하나가 자치·분권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는 1960년대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시장과 군수를 함께 선출한 지금의 동시 선거는 1995년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 법률 및 선관위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도 동시 지방선거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이제 청년기를 넘어 장년기로 접어드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사춘기마냥 갈팡질팡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지방분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래로 특별법의 형태를 유지했었다. 지방자치법이 1949년 이래로 일반법의 기본적인 골격을 지탱하고 있어서, 중앙정부가 보유하는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법률은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지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자치분권형 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국가 대개조를 시도했을 정도였다. 물론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후임 윤석열 정부는 지방자치와 상반되게 균형발전 특별법과 통합하는 개편마저 단행하고 말았다. 사실 균형발전은 낙후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힘센 중앙정부가 주도해서 국토의 균등한 발전을 추구하는 전략이어서 자치분권과는 대립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사생아처럼 탄생한 지방시대위원회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는 상황이다. 공자는 나이 30이면 뜻을 세운다고 했는데, 한국의 자치분권은 30년이 지나도록 전혀 일어서지 못한 채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2025년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지역 차원의 변화가 만들어진 시기이다. 1992년 기후변화협약의 체결 이래로 중앙정부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하고 목표치를 제시하는 등의 대응을 일관되게 펼쳐왔지만, 지방정부 차원의 기후정책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광역 시도는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기후변화 적응계획을 수립해 온 내공이 쌓여있는 편이다. 반면에 기초지자체는 지구온난화 같은 거대 담론을 동네에서 감당할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채, 지역의 홍수나 폭염 같은 적응계획만 수립해 왔던 게 한국의 현실이었다.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은 시군구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보고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이때 제출 마감이 바로 2025년 5월이었다. 물론 성실한 한국의 공무원들은 기한을 잘 지키는 편이다. 226개의 기초 지자체가 빠짐없이 계획을 수립해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환경부는 대략적인 감축량이 국가 목표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모범 지역들을 제시하며 장밋빛 미래를 공표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과연 시군구의 온실가스 계획은 중앙정부 말대로 제대로 수립되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이런 수준의 보고서는 공무원들이 직접 작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연구 용역의 형태로 발주가 이루어진다. 이때 통상적인 용역 비용을 오천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전국 기초지자체를 단순 계산해보면 백억에 달하는 연구 용역 시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로 전국 기초 지자체의 보고서는 몇몇 업체들이 전담해서 작성했으며, 대부분 비슷한 양식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시행 사업, 기대 효과 등의 목차를 따르고 있다. 이들 용역업체는 감축 목표의 경우에도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작성해 준다. 정부 계약에서 을인 업체는 갑이 요구하는 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시군구의 탄소중립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전화해 보면, 공무원이 내용을 모른다며 작성 업체 연락처를 알려주고 물어보라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대학이 용역을 맡아서 작성했던 보고서 중에는 다른 지역의 절반 수준인 20%를 감축 목표로 과감하게 제시한 지역까지 존재한다. 환경부가 목표 미달 시 책임을 묻겠다는 으름장에 놀라, 꿋꿋이 고집을 부렸던 학계의 자존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제 기초 지자체의 탄소중립 보고서가 공개된 지 반년이 지나간다.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검토하는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종합 보고서와 정리된 수치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과연 공장 같은 용역업체들이 200여 개 시군구의 보고서 중에서 얼마나 가져갔는지, 이들의 목표치와 대학 혹은 지자체 산하 연구원 등이 담당한 경우의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직접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면, 일단 정리한 검토된 종합 보고서를 공개한 뒤 다른 전문가들이 분석할 수 있게 수치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
이처럼 지방자치 30년과 기초지자체 기후 대응 원년으로 기록될 2025년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지나고 말았다. 탄핵 극복이라는 명분만으로 기후 무책임이 묻혀서는 안 된다. 중앙 및 기초 정부만큼이나 시민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몇몇 시군구에서는 온실가스 인벤토리 혹은 배출 목록을 주민들이 직접 들여다보며 감시하려고 애썼던 지역들이 있다. 대구·경북 7개 시군구의 탄소중립 모니터링 보고서는 생명평화아시아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으니,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환경부는 지난 7월에 마무리한 종합 검토 보고서를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지역 주도의 온실가스 감축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으면서도, 시군구의 행정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계획을 작성했는지 아니면 용역업체에 떠넘겼는지를 정리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다음으로 주민 주도 감축을 강조하고 있지만, 역시나 캠페인 동참만을 언급할 뿐이지, 해당 지역에서 주민들이 얼마나 참여했는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부가 보고서와 정리된 수치 자료를 공개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지, 한국의 탄소중립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새해 소망을 환경부와 함께 우리 동네 탄소중립 들여다보기로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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