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발굽·목 등 닮아 붙여져…'갈마음수' 풍수와 연결된 지명도
진천 초평 말머리마을, 제천 수산 말바위에는 애틋한 전설 서려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붉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이다.
십이지지 중 7번째에 위치한 말은 과거 주요 교통수단이자 전투 수단으로 매우 중요시된 동물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신화와 전설 속 말은 신의 영역과 통하는 영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충북 곳곳의 지명이나 전설에는 어떤 말 이야기가 깃들여져 있는지 살펴봤다.
◇ 마미산·말목이·마랑골 등 말 관련 지명 다양
1일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지명 150만여개 가운데 말과 관련된 곳은 744개에 이른다.
충북에도 마을·산·고개 등 64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지명까지 더하면 그 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말 관련 지명의 가장 흔한 유래는 마을 인근에 말을 닮았거나 말 발자국 같은 흔적이 있는 바위가 있는 경우다.
괴산 감물면 광전리, 단양 가곡면 가산리, 보은 삼승면 거현리, 영동 용산면 율리, 음성 소이면 호미리·원남면 보룡리, 제천 봉양면 주포리 등에 이런 연유의 '말바위' 또는 '말바우'가 있다.
말과 관련된 형세에서 유래된 지명도 많다.
충주 산척면 명서리와 제천 청풍면 장선리·봉양읍 구곡리에 걸쳐 있는 '마미산'은 말미산 또는 말꼬리산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모양이 말꼬리 형상이라서 붙여졌다고 한다.
옥천 군북면 '마작골'과 충주 신니면 '마제'는 마을의 지형이나 뒷산 형태가 말발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또 영동읍 '말목이', 괴산 청천면 신월리 '말목골', 단양 적성면 '말목산', 보은 마로면 '말목재', 옥천읍 '마항' 등은 주변 산형 또는 고개가 말의 목처럼 생겼다.
영동 양강면 묘동리 '마포', 옥천 군서면 사양리 '마랑골', 충주 수안보면 중산리 '갈마고개' 등은 풍수지리상 '갈마음수(渴馬飮水·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세)'와 연결된 지명이다.
옛 선조들은 풍수지리적으로 돌출된 지형이 있고 그 앞으로 시냇물이 흐리는 지세를 가리켜 갈마음수형 명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말 관련 전설과 함께 말무덤 흔적이 남아 있어 생겨난 지명도 눈에 띈다.
보은읍 중동리 '말무덤거리', 영동 양강면 가곡리와 충주 대소원면 본리 '말무덤이', 음성 대소면 소석리와 청주 남일면 장암리 '말무덤', 진천 이월면 삼용리 '말무덤보'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말이 뒹굴었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져 붙여진 음성 감곡면 오궁리 '말구리재'와 원남면 삼용리 '말둥구리', 진천 백곡면 대문리 '말구리고개' 등도 있다.
◇ 애마 사연 담긴 '말머리마을', 임진왜란 한 서린 '말바위'
말 관련 지명을 둘러싼 흥미로운 전설도 다수 전해진다.
진천 초평면 오갑리 '말머리마을'에는 공연한 내기를 하다가 소중한 말을 죽였다는 장사(壯士) 이야기가 구전된다.
조선시대 이 마을에는 '이방조'와 '이방장'이라는 두 장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 둘은 매일 만나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하며 무술을 연마했는데, 어느 날 말을 탄 채 화살을 쏘아 말과 화살 중 어느 게 빠른지 내기를 하게 됐다.
만약 화살이 빠르면 말의 목을 베고, 말이 빠르면 활을 먹어버리기로 약속한 둘은 곧 경주를 시작했다.
이방조가 활터에서 화살을 쏘고, 이방장은 말을 타고 마을로 향했다.
얼마 뒤 마을에 도착한 이방장은 화살이 보이지 않자 자신이 뒤늦게 온 것이라 생각하고 화가 치밀어 약속한 대로 말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화살이 뒤늦게 날아와 떨어졌고, 이방장은 그제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를 애석하게 생각해 애마의 머리를 정성껏 묻어 주고 기렸는데, 이때부터 이 동네를 '말머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제천 수산면 계란리의 '마당바위'와 '말바위'에도 전설이 서려 있다.
마당바위에는 말 발자국 같은 흔적이 있고, 말바위는 모양 이 말처럼 생겼는데 그 연유가 전설에 담겨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 피난민들이 마당바위로 몰렸다.
이때 장수 한 명이 왜군과 싸우러 가기 전에 말을 타고 마당바위를 거닐면서 말 발자국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장수는 단기(單騎)로 왜군과 싸우다 부상해 마당바위로 돌아왔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자결하고 말았다.
한이 서린 장수는 바위로 변했고, 그가 타고 다니던 말 역시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지금의 말바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말무더미'는 고구려 온달(?∼590) 장군이 이곳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자기 말이 창에 맞아 죽자 묻어준 말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양한 지명과 유래담 등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디지털문화대전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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