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정의로운 항쟁 5·18민주화운동이 새해로 46년째를 맞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사죄 한 마디 듣지 못한 항쟁 주역도, 단죄 받지 않은 신군부 핵심 인물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더 늦기 전에 항쟁 정신을 후대에 서둘러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특히 12·3 불법계엄을 계기로 재조명된 5·18 정신을 헌법에 새겨, 흔들리지 않는 민주 헌정사 가치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와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항쟁 주역 잇단 영면…가해세력 끝내 침묵
1일 국가보훈부와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5·18 항쟁 이후 생존 유공자 266명이 영면했다. 2023년 한 해에만 유공자 60명이 별세했다.
지난해 말 기준 5·18 유공자는 1433명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70~80대 고령이며 상당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겹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초대 오월어머니집 관장 고(故) 안성례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 간호사였던 안 여사는 계엄군에 다친 시민들을 돌보며 헌혈 동참을 독려했다. '5·18 주동자'로 몰려 투옥된 남편 고(故) 명노근 교수의 석방 운동도 벌였다.
2006년에는 5·18로 옥고를 치른 가족을 뒷바라지한 여성들과 함께 '오월어머니집'을 세웠고 이후에도 일생을 5·18 진상 규명에 힘썼다.
'5·18 사형수' 정동년 5·18기념재단 전 이사장도 5·18 43주년이었던 2022년 5월 세상을 떠났다. 정 전 이사장은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특사로 풀려난 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신군부 고문 수사를 폭로했다.
1994년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 35명을 내란·내란 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하며 사법적 책임을 묻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한 해에만 시민군 민원부장 정해직 선생, '고등학생 시민군' 김향득 선생 등이 고문 후유증과 지병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등졌다.
유혈 진압을 이끈 학살 책임 세력 신군부 주요 인사들도 제대로 된 단죄도, 사죄 한마디도 없이 죽음으로 책임을 외면했다.
전두환·노태우·이희성·황영시·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 5인 중 생존자는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유일하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 조사 과정에서도 신군부 요인 중 누구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당시 기동타격대원 김공휴씨는 "5·18 유공자 평균 연령은 이미 70세 전후다. 상당수가 힘겹고 불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반면 신군부 세력들은 현충원에 안장되는 등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꼬집으며 "새해에는 나라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더 존중하고 진압 책임자들의 양심 고백이 뒤따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은 진행형…항쟁 의의는 분명
46년이 흘러도 발포 명령자 규명, 행불자 암매장 의혹 등 핵심 규명 과제는 풀리지 않았다.
정부 공식 진상규명 활동으로서 2020년 5월부터 4년간 활동한 5·18조사위는 '발포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사실상 전두환 지시다' 등 진술을 토대로 전두환이 최종 발포 명령자임을 추론할 단서를 확인했다. 그러나 교차 검증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로서 확정하는 진상 규명 결정은 하지 않았다. 암매장 의혹도 가설 제시에 그쳤다.
5·18조사위 자료를 토대로 학계와 5·18 재단 차원의 분석·연구 활동이 이어지며 진상 규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 만큼은 이제 흔들림이 없다.
1988년 국회 5·18청문회부터 1995년 5·18 특별수사, 2017년 국방부 특별조사, 2024년 5·18조사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공식 진상 규명 활동은 '불의에 맞선 정의로운 주권자의 저항'이라는 항쟁 의의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법원 역시 잇단 5·18 관련 소송에서 시민군의 저항을 '신군부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맞선 정당 행위' 등으로 규정하며 각종 왜곡·폄훼 주장들을 일관되게 배척하고 있다.
◆불법계엄 계기, 헌법 수록 '공감대' 커져
12·3 불법 계엄으로 민주주의가 또 한 번 무너질 뻔한 위기를 겪으며 5·18의 헌정사적 의의는 재조명됐다.
시민이 서로 연대하며 불의한 권력을 심판할 수 있었던 데에는 45년 전 신군부 계엄 확대에 피로써 저항한 5·18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헌정 위기 극복과정에서 자랑스러운 민주 항쟁사이자, 불의에 맞선 저항의 표상으로써 5·18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다.
국헌에 담아 후대에 계승,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자는 취지에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더욱 넓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도 5·18 헌법 수록을 개헌안에 담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지난 대선 후보 모두 동의할 정도로 다른 개헌 쟁점과 달리 여야 이견이 없다.
광주시와 5·18 단체, 시민단체들도 헌법전문 수록 국민추진위원회를 꾸려 개헌 여론을 모으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가 열릴 예정인 오는 2월 중에는 결의대회도 연다.
박강배 5·18재단 상임이사는 "내란 이후 들어선 다시 민주적인 정부를 세운 핵심 정신은 5·18이다. 정부가 개헌에 나서 5·18 정신은 헌법 전문에 반드시 실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다시는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리거나 후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회장은 "이미 국민적인 합의를 이룬 사안이라고 봐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남은 것은 정치적 결단과 실행으로서 역사적 책무를 완성하는 일이다"며 "국가가 5·18 유공자들의 민주화를 위한 헌신을 인정하는 길이기도 하다. 항쟁 주역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하루라도 빨리 헌법 전문 수록을 완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Copyright ⓒ 모두서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