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인생 2회차? '만 17세' 진초이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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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생 2회차? '만 17세' 진초이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인터뷰]

이데일리 2025-12-31 20:33: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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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혹시 인생 2회차?’

싱어송라이터 진초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시간을 착각하게 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만 17세인데, 대화는 그보다 훨씬 멀리서 흘러온다. 음악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기술과 인간, 기억과 시간으로 번져간다. 또래의 언어라기보다는 이미 여러 계절을 지나온 사람의 말에 가깝다. 그렇다고 무게를 잡지는 않는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저, 그냥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진초이


지난 5일 발매한 진초이의 세 번째 EP ‘핸들위드케어’(handlewithcare)는 그런 태도에서 출발한다. 어린 나이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발상 그리고 그 감정을 정리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선택 말이다. 그는 추억을 ‘돌아가고 싶은 과거’로 다루기보다,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상태로 끌어온다. 이 유쾌하면서도 과감한 접근은 앨범 전반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16년을 그리워한다고 하면 다들 ‘너무 어린데?’라고 말해요. 그런데 저는 추억이 꼭 나이와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앨범의 중심에 놓인 곡 ‘2016’은 제목부터 묘한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2016년은 이미 충분히 지나간 과거지만, 진초이에게 그 해는 여전히 현재형에 가깝다. 부모의 보호 아래 있던 안정감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아직 배우기 전의 시간 그리고 모든 것이 지금보다 단순했던 환경. 그는 그 시절을 향수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을 차분히 꺼내 놓는다.

“그땐 책임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어요. 부모님이 계시니까 모든 게 당연하게 안정적이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몰랐던 시기였죠.”



‘2016’의 가사에는 실제 우편번호 ‘91604’가 등장한다. 그가 미국에서 지냈던 동네의 좌표다. 추억을 감정적인 언어로 풀어내기보다, 구체적인 숫자로 남기고 싶었다는 선택은 인상적이다. 기억은 흐릿해질 수 있지만 좌표는 남는다.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는 기억 속 동네 지도를 직접 그리고,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스톱모션으로 완성했다.

“기억 속에 있는 지도를 한 번 그려보고 싶었어요. 감정으로 설명하기보다, 그냥 좌표처럼 남기고 싶었달까.”

아이패드, 종이, 아이폰 SE 같은 도구들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다. 지금 떠올린 이미지를 가장 잘 옮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 충분하다.

“저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죠.”

이러한 태도는 EP의 제목 ‘핸들위드케어’로 이어진다. ‘조심히 다뤄달라’는 이 문구는 감정이나 기억을 넘어, 진초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가깝다. 수록곡 ‘엘프 온 더 쉘프’(elf on the shelf)에서 그는 토이 스토리 속 장난감 이야기를 떠올린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만, 함부로 만지는 순간 마법이 깨져버리는 존재 말이다.

“아름다운 건 만지면 깨지잖아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더 오래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EP는 완성된 노래라기보다 메모와 녹음, 스케치처럼 느껴진다. 덜 정리된 상태는 미완이 아니라 의도다.

“리스너가 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감정은 꼭 설명되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으니까요.”

작업 방식 역시 직관적이다. 그는 트랙을 들으며 핀터레스트와 사진 갤러리를 오가고, 이미지 속에서 노래의 장면을 찾는다. 가사는 그 장면 위에 얹힌다. 영어 가사는 빠르게 쏟아내지만, 한국어 가사는 오래 붙잡는다.

“영어가 편하긴 한데, 한국어로 말할 수 있을 때 놓치고 싶진 않아요. 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번 EP의 인트로 트랙 ‘인스트루먼트’(Instrument)는 그의 문제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오직 목소리만으로 쌓아 올린 이 트랙은 인공지능(AI) 음악이 빠르게 확장되는 시대에 대한 응답처럼 들린다. 그는 AI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영역에 흡수될 생각도 없다.

“AI가 대단한 건 알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뭘로 남을 수 있을까’를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가 내린 답은 단순하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신체, 자신의 감각이다.

“그래서 그냥 생각했어요. ‘내가 악기다’라고.”



진초이의 아버지는 프로듀서 히치하이커다.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메이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는 그 후광을 기대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그런 건 제 음악이랑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플레이리스트에 안착하며, 공연을 통해 음악이 사람에게 닿는 순간을 체감해온 과정은 이미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그는 천재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조차 스스로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그가 자신의 선택을 영원한 것으로 고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음악을 하다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고, 말하는 일을 더 잘하게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이게 영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핸들위드케어’는 그렇게 남았다. 함부로 만지지 않아서 더 오래 남을, 한 명의 창작자가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진초이가 앞으로 보여줄 장면들은 아직 훨씬 많이 남아 있다. K팝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 말은 이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꽤 구체적인 얼굴을 갖는다. 그리고 그 얼굴은 아직,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초이는 만약 2016년의 자신을 만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핸드폰 내려놓고, 지금 당장 뛰어다니라고요. 더 빨리 어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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