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명에 달하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국회 6개 상임위 연석청문회가 30일에 이어 31일 이틀째 진행됐다. 2025년 마지막까지 쿠팡 청문회로 국회는 뜨겁게 달구어졌다.
31일 '쿠팡 연석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는 쿠팡의 '셀프조사' 발표가 국가정보원의 지시였다는 주장을 이틀 내내 이어가며 한국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재걸 법무담당 부사장도 국정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같은 주장을 반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려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쿠팡 사태는 쿠팡의 시스템 관리 미흡에 따른 정보유출임에도, 쿠팡측은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전략을 세우며 동문서답과 앵무새 답변으로 일관해 청문위원들을 분노케 했다.
이에 민주당은 쿠팡 불법행위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며 '강제동행' 명령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와 국정원은 헤롤드 로저스 임시대표를 위증죄로 고발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김범석 쿠팡Inc 의장에 대해선 국정조사 추진 카드로 강경대응하며 강제동행 명령을 검토하겠단 뜻을 밝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해를 넘기게 됐다.
정부 '세무조사·출국금지' 등 전방위 대응 나서며 쿠팡 압박
정부는 집단소송제 도입과 쿠팡의 영업정지 검토, 미국 국세청과 협조를 통한 쿠팡 본사의 세무조사, 로저스 대표 등 쿠팡 임원진의 출국 금지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송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대표 원고 승소 시 피해자들에게 판결 효력이 모두 적용되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시사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31일 집단소송제 도입 가능성을 묻는 오기형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집단소송제를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영업정지와 관련해선 "어떤 정보가 유출됐고 피해 회복 조치가 적절한지 등을 판단해 필요하다면 영업정지까지 처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주 위원장은 전날인 30일에도 "시장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경찰은 위증 논란이 불거진 로저스 대표의 출국금지 조치를 검토 중이다. 유재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31일 "국회 고발이 있으면 신속하게 조사를 진행해 수사팀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국세청 역시 쿠팡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30일 열린 청문회회에서 "국세청은 현재 쿠팡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혐의가 확인되면 철저히 조사해 조세 정의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탈세 혐의가 드러날 경우 김 의장 개인에 대한 조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이 "김범석 의장에 대한 세무조사 및 조세범칙 조사 전환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임 청장은 "조사4국의 세무조사는 대상과 범위를 미리 예단하지 않는다"면서도 "혐의가 나오면 관련인을 추가 선정해 끝까지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세청(IRS)과의 공조 가능성도 공식 언급됐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미 조세조약에 따른 공조 요청 여부를 묻자 임 청장은 "공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대한 하겠다"고 답해 미국과 공조한 세무조사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정부는 쿠팡의 자료 관리와 조사 협조 태도도 문제 삼았다. 쿠팡 사태를 총괄하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쿠팡은 피조사기관으로서 민관합동조사단, 경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약 3000건 유출'이라고 발표한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며 "국가 배후 사이버 공격에 악용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사실 기반의 조사 결과를 먼저 공개했어야 했다"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쿠팡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을 질타했다.
민주당도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해외에 거주 중인 김범석 의장과 김유석 부사장을 대한민국 국회에 세울 것으로 예상돼 쿠팡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까지 증인 출석을 거부할 경우 동행명령 등 강제구인까지 검토하고 있다.
로저스 대표·이재걸 부사장 "용의자 만남 국정원이 시켰다...12월2일 국정원 공문 받았다"
국정원 "위증" 반박, 쿠팡과 국가기관 '진실공방'
로저스 대표는 30일에 이어 31일 열린 쿠팡 연석 청문회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사건 '셀프조사' 논란에 대해 "국정원의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31일엔 로저스 대표에 이어 이재걸 법무담당 부사장도 "국정원이 12월2일 공문을 보냈고 지시에 따르는 취지로 용의자를 만났다"고 말해 '정부 부처의 지시'로 중국 국적의 전 직원을 만났다고 밝혔다.
로저스 대표는 적반하장으로 나와 31일엔 용의자와의 만남에 대해 "쿠팡과 한국 정부 간 성공적인 협력 사례를 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느냐"며 국정원의 지시로 인해 만난 것이 '성공적 협력'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31일 열린 청문회에서 "로저스 씨가 (30일 청문회에서) 국정원을 끌어 들였는데 로저스 씨와는 도저히 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이재걸 부사장에게 묻는다"며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용의자가 접촉하라고 지시한 일이 있느냐"고 묻자 이 부사장은 "12월 2일 국정원으로부터 공문을 받았고 해당 사안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 협조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12월 초 국정원 측으로부터 '지금은 용의자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고 저희는 이를 국정원의 요청으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이 부사장은 노종면 민주당 의원이 "국정원 직원과 접촉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하자 "(접촉한) 국정원 직원은 3명이다. 국정원에서 받은 공문도 하나 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이 재차 '그 직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부사장은 "알고 있다"고 답하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국정원에서 제게 그 용의자의 위치를 물어봐 저희가 정보를 제공했다. 그다음에 용의자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요청은 세 번 이상 있었다"고 주장해 국정원이 중국인 전 직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쿠팡 측의 주장에 정부는 쿠팡이 제공한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으며 국정원 또한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일개 사기업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쿠팡으로부터 로비를 당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쿠팡과 접촉한 국정원 직원들을 향후 국정조사에 불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훈 부총리는 "정부는 쿠팡에서 주장하는 용의자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쿠팡이) 보안기관에 어떤 자료를 제공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분석돼 결과를 도출했는지 등 모든 과정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지난 30일 로저스 대표가 국정원의 지시라고 주장하자 이종석 국정원장은 청문회 도중 최 위원장을 통해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를 위증죄로 고발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30일 오후엔 보도자료를 통해 로저스 대표의 발언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국정원의 지시·명령에 따라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조사했다는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은 자료 요청 외에 쿠팡사에 어떠한 지시·명령·허가를 한 사실이 없으며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주장해 쿠팡의 '셀프조사' 발표를 두고 국정원과 사기업이 진실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됐다.
쿠팡 '셀프조사' 일방 발표에 배경훈 "문제 본질 집중하라"
'쿠팡 사태 범정부 TF' 팀장인 배 부총리는 쿠팡이 정부의 조사 관련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며 피조사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라고 질타했다.
배 부총리는 31일 열린 청문회에서 발언을 자청해 국정원 지시를 따라 '셀프 조사'한 것이라는 쿠팡 주장에 "문제의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쿠팡은 민관 합동 조사단, 경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데 있어 협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 압수물을 국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국정원과 협조가 있었다고 보고 받았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압수물 등의 내용이 정부 측이 조사한 결과와 일치하는지 결과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쿠팡에 160여 건 자료 요청을 했지만 50여 건만 제출받은 상태다. 쿠팡이 민관 합동 조사단의 요청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쿠팡이 사실 기반의 이야기와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든지 보상 방안을 밝혔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피조사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배 부총리는 "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일벌백계하겠다"며 쿠팡을 향해 경고의 말을 전했다.
한편, 쿠팡은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3000건의 정보만 유출됐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그대로 공시했다. 쿠팡은 수사기관이나 제3자가 아니라 자체 조사 결과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한국 정부의 입장도 담지 않았다.
"동문서답 말라" 지적에 로저스 "왜 이런 대우 받아야 하나"
쿠팡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 자체 조사 의혹을 놓고 31일 국회 측 청문위원들과 로저스 대표 간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였다. 질의 과정에선 양측 간 고성이 오갔으며 로저스 대표는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거나 인상을 찌푸리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등 불쾌함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31일 열린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에게 "쿠팡에서 누가 국정원 또는 경찰과 협력을 했다는 것인지 설명해보라. 대한민국 정부 발표를 부정하는 것이냐"고 질의하자 로저스 대표는 "해당 정부기관(국정원)에서 법 조항을 인용하며 쿠팡이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정 의원은 "로보트도 아니고 왜 앵무새처럼 계속 협조 관계만 이야기하는 것이냐. 외울 것 같다. 똑같은 동문서답은 그만하라"고 지적하며 자신을 향한 질책이 잇따르자 로저스 대표는 "지금 이게 재미 있으신가. 저를 증언대에 세워서 퀴즈를 내고 비웃는다. 제가 왜 이런 대우를 받는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이며 책상을 탁탁 치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이에 정 의원 역시 고성으로 "하루 전 물어본 미국 본사에서 한국 쿠팡에 파견된 직원이 170명이 맞는지에 대한 답을 하라. 왜 횡설수설하느냐"고 지적했고, 로저스 대표는 "소리 지르지 말라. 왜 소리를 지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대답하게 해달라"며 맞섰다.
로저스 대표는 30일에도 동시통역기 착용을 두고 "정상적이지 않다. 내 개인 통역사를 쓰게 해 달라"며 설전을 벌이는 등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해 청문위원들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는 김범석 의장에게 국정조사에 출석하라는 뜻을 전달하라는 요청과 관련해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장에게 지시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밝히며 "약간은 이상한 요청처럼 보인다"며 답했다.
이에 청문위원들은 "답변만 하면 되는데 설교를 하려고 한다,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는다"고 강도 높게 질타했지만 로저스 대표는 반응하지 않았다.
쿠팡 보상안·노동환경 질의하자 "택배 체험하겠다, 같이 하자"
로저스 대표는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과 관련해선 '조건 없는 보상'임을 거듭 강조했다. 쿠팡이 제시한 5만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 조건은 없다"며 향후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될 경우에도 "보상안 이용 여부가 감경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환경과 관련한 질의에서 염태영 민주당 의원이 새벽배송 사망자의 노동 실태를 지적하며 "택배 야간 근무 어려움을 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자 "저는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다. 의원도 같이해주길 바란다"며 염 의원에게 '야간 택배를 같이 하자'고 역제안 하기도 했다.
쿠팡 피해 납품업체 대표 "쿠팡이 때리면 맞았다, 억울"
31일 청문회에는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검은 모자로 온 몸과 얼굴을 가린 쿠팡 피해 중소상공인이 나와 피해 진술을 했다.
익명 참고인으로 참석해 증언대에 선 그는 "쿠팡이 때리면 맞고, 쿠팡이 요구하면 그 요구에 응해야 했다"며 "협박과 갈취가 익숙해질 정도"라고 말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납품업체 대표는 신분 노출을 두려워해 얼굴을 숨긴 자신의 모습과 증인석에 앉은 쿠팡 경영진을 비교하며 "맞는 이치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인기 상품을 동일 디자인으로 판매하고, 해외 공장을 찾아가 쿠팡 PB로 공급하라고 압박하거나 거래 중단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판매 1위 제품을 PB에 빼앗겼고, 그런 일이 6년 전부터 지금까지 반복됐다. 청문회가 진행 중인 지금 이 순간에도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를 향해 "피해 기업을 막고 구제할 수 있도록 '쿠팡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피해 기업들은 정부 기관보다 쿠팡을 더 무서워한다.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고해도 막지 못했다는 점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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