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뷰]쿠팡 청문회가 겨눈 본질, ‘사건’ 아니라 CLT라는 결정 구조와 설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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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뷰]쿠팡 청문회가 겨눈 본질, ‘사건’ 아니라 CLT라는 결정 구조와 설계자였다

뉴스로드 2025-12-31 19:10: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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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형 의원이 쿠팡 청문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오기형 의원이 쿠팡 청문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쿠팡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사건이 아니다. 결정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보이지 않는 구조다. 개인정보 침해, PB상품 검색순위 조작, 노동현장 문제는 겉으로는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에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의 질의를 한 줄로 꿰으면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쿠팡의 최종 결정은 어디에서, 누구 손을 거쳐 내려오나.” 소비자·시장질서·노동이라는 언어는 달랐지만, 세 의원이 닿은 결론은 같았다. 한국에서 피해가 발생했는데, 책임을 고정할 손잡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심 키워드는 CLT였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근거로 CLT를 쿠팡 내부 의사결정 기구로 지목했다. ‘Coupang Leadership Team’으로 불리는 CLT는 내부 문서에서 쿠팡 전체를 총괄하는 ‘executive steering committee’로 설명돼 있고, 구성원은 김범석 의장과 그의 직속 보고 라인, 핵심 스태프로 기재돼 있다. 오 의원은 “이사회와 별도로 실질적 결정을 내리는 조직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며, 쿠팡의 주요 사안이 어디에서 결정되는지를 정면으로 물었다.

CLT [사진=최지훈 기자/오기형 의원실]
CLT [사진=최지훈 기자/오기형 의원실]

오 의원 질의는 곧바로 구체적 사례로 이어졌다. 공정위 의결서에는 PB상품 검색순위 조작이 CLT 결정으로 시행됐다는 취지의 내부 자료가 제시돼 있다. 숫자도 특정됐다. 임직원 2297명이 검색순위 조작에 동원됐다는 내용이다. 검색 결과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조직적 동원으로 이뤄졌다면, 쟁점은 실행이 아니라 결정의 주체로 이동한다. 오 의원이 “누가 결정했느냐”를 집요하게 묻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법적 책임 문제가 겹쳐졌다. 오 의원 측 자료에는 김범석 의장이 미국 상장사인 쿠팡 Inc.에서 높은 의결권을 보유하고, CLT를 통해 쿠팡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구조가 제시됐다. 이에 따라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 책임과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됐다. 한국에서 결정이 집행되고,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결정의 정점 역시 한국의 책임 체계로 묶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 [사진=최지훈 기자/김남근 의원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 [사진=최지훈 기자/김남근 의원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문제를 피해자 구제 구조에서 짚었다. 개인정보 침해사고의 경우, 피해자는 회사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언제 어떤 판단을 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김 의원은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필요성을 함께 제시했다. 결정 과정과 기록을 기업이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책임 규명이 끝내 ‘추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정혜경 의원에 따르면 쿠팡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하며 피해자에 대한 권리 구제 방해를 시도했다. [사진=최지훈 기자/정혜경 의원실]
정혜경 의원에 따르면 쿠팡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하며 피해자에 대한 권리 구제 방해를 시도했다. [사진=최지훈 기자/정혜경 의원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노동 현장에서 같은 구조를 포착했다. 정 의원은 “자필 기재가 없고, 유족도 본 적 없는 막도장이 사용된 계약서”를 문제 삼았다. 정혜경 의원실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1월 작성된 근로계약서에는 ‘단시간 근로자’로 기재된 내용이, 2023년 12월 민사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계약서에서는 ‘일용직 근로자’로 변경되고, 업무 범위에 ‘상·하차’ 문구가 추가돼 있다.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둘러싼 법적 책임이 사후 문서 정리 과정에서 달라지는 구조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정일영 의원이 밝힌 국정원 공식 설명문 [사진=최지훈 기자/정일영 의원실]
정일영 의원이 밝힌 국정원 공식 설명문 [사진=최지훈 기자/정일영 의원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이 별도의 축으로 등장하면서 청문회의 성격은 달라졌다. 국가정보원은 침해사고 대응 과정과 관련한 공식 설명을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고했고, 정 의원은 이를 청문회장에서 직접 공개했다. 정 의원이 밝힌 국정원 설명에 따르면, “쿠팡이 국정원의 지시·명령에 따라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국정원은 자료 요청 외에 어떠한 지시·명령·허가를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유출자와의 연락 또는 접촉을 지시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는 점도 명시됐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개로 확인된 국정원 설명은, 침해사고의 원인과 별개로 사고 이후 대응 과정의 책임 주체를 분리해 보여줬다. 국정원은 “유출자 접촉 여부를 포함한 최종 판단은 쿠팡이 하는 것이 맞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조사와 대응,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은 국가기관이 아닌 쿠팡 내부 판단의 영역이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쟁점은 다시 쿠팡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국가기관의 개입 여부가 아니다. 개입이 없었다는 점이 확인된 이후에도, 쿠팡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을 어떻게 설명해왔는지가 핵심으로 남는다. 내부 조사 과정, 외부 기관과의 접촉, 유출자 대응을 둘러싼 진술의 일관성과 정확성이 정면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문회는 해명 공방을 넘어, 위증 고발 가능성까지 포함한 법적 쟁점으로 성격이 이동했다.

네 의원의 질의와 공개가 도달한 지점은 하나였다. 쿠팡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의 규율과 구제”로 끝까지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이다.시장질서 조작 의혹은 CLT 결정 → 임직원 조직 동원 → 검색 결과 왜곡이라는 의사결정 사슬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개인정보 침해는 사고 이후 대응 판단 → 기록 관리 → 입증 책임의 단계에서 멈춘다. 노동 문제는 현장 발생 → 계약·문서 → 소송으로 갈수록 책임이 흐려진다. 사건은 달라도, 막히는 지점은 같다. 결정은 위에 있고, 책임을 붙잡을 장치는 아래에 없다.

국회가 동일인 지정, 업무집행지시자 책임, 집단소송·징벌배상·디스커버리를 동시에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청문회가 남긴 결론은 불편하지만 분명하다. 쿠팡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수록 먼저 드러난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책임을 묶어둘 ‘손잡이’의 부재였다. 국회가 CLT라는 내부 용어까지 공식 석상에 올린 것은 특정 조직을 낙인찍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정이 내려온 경로를 기록으로 드러내고, 그 경로 끝에 책임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이제 남은 것은 해명이 아니라 경로의 공개와 의사결정 구조 설계자 특정이다. 그 경로가 투명해지지 않는 한, 같은 유형의 사고는 이름과 형태만 바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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