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강골검사' 실존모델…검사장급 대검 참모 시절 방에 '칼과 야구방망이'
권총 차고 조폭 검거 현장 나갔지만 후배들에 "검사는 검사지 형사반장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임주영 기자 = 조직폭력배 사이에서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 검사'로 이름을 떨친 조승식(趙承植) 전 대검찰청 강력부장(검사장)이 30일 오전 3시2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31일 전했다. 향년 73세.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전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1977년 사법시험(19회)에 합격해 1979년 사법연수원(9기)을 수료했다.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1979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했으며 대구·수원지검 강력부장을 거쳐 검사장급인 대검찰청 강력부장과 마약·조직범죄부장, 형사부장 등을 역임한 뒤 2008년 퇴직했다.
1981년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근무하면서 '조폭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유학과 법무부 파견 근무를 하느라 잠시 멈췄다가 1989년 서울지검 특수1부에 근무할 때 재개했다.
'강력·조폭 수사의 달인'으로 통했다. 주요 부임지마다 관내 조폭을 소탕해 '조폭들이 치를 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폭 사이에서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 검사'로 악명이 자자했다. 1990년 5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발족 직후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차고서 동부이촌동 사우나에서 당대 최고의 조폭 김태촌(1948∼2013)씨를 검거했다. 권총을 차고 간 이유를 "경찰이 총을 쏘면 과잉 대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직접 현장 상황을 판단해서 총을 쏠지 말지 결정하되 이후 책임을 지려고 그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후배 검사들한테는 형사사법의 축이자 법률가인 검사임을 잊지 말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조폭을 잡으러 현장에 나가는 후배 검사들에게 "검사는 검사지 형사반장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의 강골 검사 조범석의 실존 모델로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감독이 제작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고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근무할 때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며 퇴근 후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가 하면 단짝 친구가 수사 대상에 오르자 의절하고 수사할 정도로 공사 구분이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이 굵은 상남자 스타일이지만 속 깊은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변호사 시절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임에도 사건을 맡아 처리해주면서 주변에 "원래 잘 나갈 때 만나는 친구가 있고, 못 나갈 때 만나는 친구가 있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후보자로 박영수 변호사와 함께 추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제안을 받았지만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재직 당시 검도 6단으로 조직 내 '최고수'였고 명예 7단으로 위촉됐다. 그 다음이 노승권 전 검사장(4단)이었다. 고인이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참모로 근무할 당시 강력부장 사무실에는 소파 옆 협탁에 미니 야구방망이와 칼을 두고 있었을 정도로 '강력통' 검사로서 자부심이 높았고, 검도와 야구에 대한 애정도 컸다. 모교인 대전고에는 야구부가 있다.
고인은 이밖에 색소폰과 볼룸댄스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주변에 농반 진반으로 "대전고에 입학할 때 1등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것에 관심 두다가 성적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할 정도로 한 번 관심을 갖고 매달린 것에는 승부를 보는 집념의 소유자로 평가받았다.
'조직범죄수사기법'이라는 논문을 썼다. 근정포장(1989), 홍조근정훈장(2002)을 받았다.
유족은 2남(조용빈<변호사>·조용준<사업>)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2026년 1월2일 오전 6시, 장지 충남 홍성군 감곡면 천태리 선영. ☎ 02-2258-5940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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