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새삼 화제다. 서 회장은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생명과학·바이오연구 분야에 대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앞세워 K-뷰티의 혁신, 나아가 글로벌 뷰티산업의 판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62세 노(老)회장의 경륜과 연륜, 인적 자산 등을 앞세운 '인내의 리더십'이 세대교체와 단기실적에만 매몰된 재계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韓 생명과학 인재양성 요람 만든 서경배…K-과학인 양성기관 '서경배과학재단' 주목
1963년 서울 출생인 서 회장은 부친인 고(故) 서성환 창업주의 뒤를 이어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이끌고 있다. 고(故) 서성환 창업주는 1945년 부엌에서 기름을 짜던 어머니의 가내수공업을 바탕으로 아모레퍼시픽의 모태인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을 설립한 장본인이다. 1997년 34세의 나이로 태평양화학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서 회장은 사명을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으로 바꾼 후 뷰티그룹의 기반을 일궜다. 2013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올해 나이 62세인 서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 특히 그는 "아름다움과 건강으로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부친의 창업 정신을 계승해 주력인 뷰티산업과 더불어 생명과학 분야의 토대를 닦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16년 9월 서 회장이 생명과학 분야의 인재양성과 연구지원을 목적으로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서경배과학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서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다양한 공익사업을 전개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례로 서경배과학재단은 매년 도전적인 연구를 시도하는 신진 과학자들을 공개 선발해 연간 최대 5억원의 연구비를 5년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까지 재단이 지원한 신진 과학자는 31명으로 연구비 지원액은 총 860억원에 달한다. 지원을 받은 인물 중에는 소뇌 발달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이소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배아 조직 연구를 진행 중인 장지원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 다질환 치료법 개발을 전담하고 있는 조성익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 등이 있다.
지난 2020년부터는 후원을 받은 신진과학자들이 5년 동안 연구한 성과를 공개 발표하는 'SUHF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행사에는 생명과학계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기조 연설자로 나서는데 올해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영국 엑서터 대학교의 오스틴 스미스(Austin Smith) 교수가 기조 연설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피부 줄기세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지목되는 록펠러 대학의 일레인 퓩스(Elaine Fuchs) 교수가 기조 연설자로 참석했다.
록펠러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과학 연구 기관으로 현지에서 노벨과학상 제조공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밖에도 ▲리처드 헨더슨 노벨화학상 수상자(2023년) ▲피터 팍 하버드대 의대 교수(2022년)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공학과 교수(2021년)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단장(2020년) 등도 행사의 기조 연설자로 참여한 바 있다. 이들 모두 서 회장이 직접 섭외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경배과학재단에서 활동 중인 주요 임원진의 면면도 화려한 편이다. 대부분 국내 생명과학계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과거 한국생물공학회장을 역임한 김병기(1958년생)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가 꼽힌다. 오병하(1961년생)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과학장, 이현숙(1967년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고규영(1957년생) 기초과학연구원 단장, 김빛내리(1969년생)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등도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중 2021년 SUHF 심포지엄 기조 연설을 맡았던 김빛내리 교수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유전자 비밀을 밝혀 낸 주인공으로 현재 학계에서 국내 과학자 중 노벨상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부터 다지는 K-뷰티 혁신…아모레퍼시픽 미래 책임진 서경배의 '인내 리더십'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서 회장의 애정은 향후 상당한 경영적 성과를 낳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접목시키면 경쟁력을 갖춘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창업 초기부터 피부 과학 및 바이오 기반 연구를 통해 혁신적인 화장품 원료 기술을 개발해 왔다. 지금도 피부 노화 연구, 인공지능(AI) 기반 피부 예측 알고리즘과 맞춤형 스킨케어 솔루션 등의 연구 성과를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R&D 비용은 약 1300억원으로 매출의 약 3.5%에 달한다.
서 회장이 구축한 생명과학 분야 네트워크가 실제 아모레퍼시픽 제품 경쟁력에 도움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과 카이스트 연구팀이 산학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피부세포 역노화 원천기술'이 대표적이다. 해당 연구는 국제저명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되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같은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화장품 원료 개발과 응용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동백 추출물의 피부 노화 조절 성분을 활용해 주름 개선 제품 개발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하반기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던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과의 피부 장수 성분 공동 연구도 주요 사례 중 하나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22년부터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피부과와 함께 출범한 공동 연구 프로그램인 'NBRI'(New Beauty Research Initiative)를 통해 피부 장수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올해 아모레퍼시픽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성분인 '진세노믹스' '림파낙스' '레드플라보노이드' 등의 임상 효능이 입증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공동연구를 진행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마틴 프린스 알폰스(Martin Prince Alphonse) 교수는 인삼 뿌리 추출물의 항염 및 면역 조절 효능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당 성분이 외부 환경 스트레스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노화 관련 면역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입증했다. 또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안나 치엔(Anna Chien) 교수는 동백씨 추출물이 노화된 피부 세포 기능을 회복시키고 콜라겐 생성을 촉진해 피부 두께와 탄력을 증가시키는 항노화 효과를 확인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화수 등 다양한 자사 화장품 브랜드에 새로운 피부 장수 솔루션을 적용할 전망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제품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이를 바탕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 결국엔 아모레퍼시픽의 미래먹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기본부터 차곡차곡 밟아 온 서 회장에 대해서는 세대교체와 단기 실적에만 매몰된 재계 전체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인내 리더십'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서경배과학재단을 통한 신진 과학자 지원과 국내외 연구 협력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아모레퍼시픽 제품 경쟁력 향상과 글로벌 시장 확대에도 직결되는 부분이다"며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생명과학 분야에 투자하고 인재 양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은 그룹의 지속 가능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요인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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