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인력 감축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뚜렷한 고용 지원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고용 안전망 부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설비 감축보다 인력 문제와 고용 지원 공백이 더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석유화학 구조조정 시한을 앞두고 업계가 대산·여수·울산 등 3대 석유화학단지를 중심으로 재편안을 일제히 제출하면서, 에틸렌 기준 최대 370만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정부 감축 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섰다. 이에 생산량 감축에 따른 인력 감축·전환 등이 예상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고용 안정망 대책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개편으로 설비 규모를 감축하게 되면 그만큼 잉여 인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베이비부머 세대 비중이 높은 산업 특성상 고연봉 인력 부담도 크고 2029년까지 퇴직해야 할 인력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석유화학 산업 로드맵 등에도 인력 감축·전환을 전제로 한 별도의 지원 대책이 사실상 담겨 있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고용노동부의 기존 고용유지 제도를 활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현행 고용유지 지원 제도의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고용유지지원금 등 기존 제도는 회사 전체에 신규 채용이 없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석유화학 산업이 고부가·친환경으로 전환하려면 R&D 인력 채용이 불가피한데 이 경우에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석유화학 산업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인력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석유화학 기업들은 사업 철수 등 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휴업이나 대기발령, 인력 재배치 교육이 불가피하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인건비와 교육비 부담이 모두 기업 몫으로 남아 신속한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구조개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산업 전반의 비효율이 장기화될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현행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는 ‘매출 감소’ 등 전통적인 고용위기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산업위기지역 기업이나 기업활력법에 따라 사업재편을 승인받은 기업조차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구조다. 실질적으로는 공급과잉과 구조적 불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로 인정받기 어려워 제도 접근성이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에 고용유지조치 기간 중 신규 채용이 발생하면 지원금이 전면 배제되는 규정도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평가다. 대기업이나 복수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 일부 사업을 축소하는 동시에 사업 전환 부문에서 신규 채용이 불가피한데도 이를 이유로 지원이 제한되면 정부의 구조조정·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앞서 5월 업계는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 관련 제도 개선을 제안한 바 있다. 업계는 산업위기 대응지역 기업과 기업활력법상 사업재편 승인기업을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아울러 사업 축소와 신사업 전환이 병행되는 현실을 반영해, 이들 기업에 한해 고용유지조치 기간 중 신규 채용이 있어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경우 사업재편 과정에서 기업의 인건비·교육비 부담과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동시에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이를 통해 구조조정을 적기에 추진하고 산업 경쟁력 회복과 고용 안정을 함께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해석 지침도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로 꼽힌다.
해석 지침에 따르면 합병·분할·매각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인력 재배치 등 근로조건 변화가 예상될 경우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에 나설 수 있다.
정부 주도로 추진 중인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NCC 설비 감축과 인력 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노조의 합법적 쟁의행위 가능성이 높아져 구조조정 일정과 실행력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판례와 달리 구조조정이 사실상 교섭·쟁의 대상에 포함되면서, 산업 재편 과정 전반이 노사 갈등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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