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이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번 개정안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청구를 가능하게 하고 구글 등 플랫폼사업자에게 허위조작정보를 삭제·차단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법원이 허위조작정보로 판단했음에도 유포할 경우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현행법은 불법정보 유통의 처벌 규정만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추가한 것이다. 유통한 사람이 해당 정보가 불법 또는 허위나 조작인지 알고 있었어야 하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허위·조작·공익 침해 같은 용어들의 개념이 모호하고, 책임을 지울 대상이 광범위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요구해 온 유력 정치인 등 권력자들이 ‘입막음용 소송’에 나서는 행위를 막을 조항은 담기지 않았고, 폐지하기로 했던 인터넷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도 그대로 남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지난 30일 허위 조작 정보 게재자에 대한 가중 손해배상제 도입, 대규모 플랫폼의 자율규제 정책 수립·시행 등의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방미통위는 시행일인 7월 5일 전까지 하위 법령을 개정해 대규모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의 기준, 가중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게재자 기준, 투명성 센터가 수행하는 사실 확인 활성화에 관한 사업 등을 정할 예정이다. 2021년 언론중재법 개정이 무산된 이후 4년 만에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시행을 앞두게 된 것이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허위정보’와 ‘조작정보’, ‘불법정보’의 판단 요건을 구체화하고 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허위·조작정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지만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보는 유통이 금지된다. 허위 정보는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인 정보로, 조작정보는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로 각각 규정했다.
불법 정보의 개념도 확장됐다. 불법정보는 ‘공공연하게 인종·국가·지역·성별·장애·연령·사회적 신분·소득수준 또는 재산상태를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직접적인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와 증오심을 심각하게 조장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정보’로 규정했다.
개정법은 5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과 요건도 정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사실이나 의견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가 불법·허위·조작 정보임을 알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정보를 유통하면 법원이 정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가중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과방위가 전면 폐지하기로 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여러 논란 끝에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법사위가 사생활 사실 적시의 경우엔 처벌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는데, 이번엔 별도로 수정하지 않고 추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논란의 핵심은 ‘허위조작정보 유통금지 조항’이다. ‘허위조작정보 유통금지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는 이 조항에 근거해 언제든 자의적 판단에 따라 ‘허위조작정보’를 심의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이번 법안은 허위조작정보를 광범위하게 불법화해 유통을 금지하고, 행정기관 심의를 확대하며, 언론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국가 중심의 규제와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국가 주도의 행정심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 내지 확대하면서 사기업인 플랫폼에게조차 광범위한 삭제와 계정 차단 권한을 줘 논란이 되는 표현물은 무조건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방송기자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5개 언론현업단체 역시 공동성명을 통해 “허위조작정보를 법으로 규제하는 이상 표현의 자유는 훼손될 것이고, 징벌적 손배가 도입된 이상 권력자들의 소송 남발로 인한 언론 자유 위축은 막을 수 없다”며 “이번 개정안이 현장에서 언론 탄압의 수단으로 변질되지는 않는지, 권력자들이 법망을 이용해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지는 않는지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개정안이 허위·조작 정보의 유통을 막고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무책임한 언론과 유튜버들의 허위 조작정보와 불법 정보를 근절하기 위한 개정안”이라며 “무분별한 명예훼손의 눈물짓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표현의 자유 확대와 국민 통합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본회의 직전까지 수정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절차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면서 빠졌던 ‘단순 오인·착오로 인한 허위 정보 유통 금지’ 부분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표결 직후에 “반복적인 법안 수정에 대해서는 짚지 않을 수 없다”며 “법사위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 법률안이 불안전성 논란으로 본회의에서 수정되는 것은 몹시 나쁜 전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사위 설치 목적에 반할 뿐 아니라 국회란 입법기관 자체에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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