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미국의 저명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박사는 간질 치료의 일환으로 좌뇌, 우뇌 사이의 뇌량을 제거한 이른바 '분리뇌' 환자들을 대상으로 1960년대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환자의 왼쪽 눈에 '걸으세요'라는 글자를 보여주자 환자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는데, '왜 갑자기 걷느냐'고 묻자 환자는 '가서 콜라 좀 가져오려고요'라고 답했다.
왼쪽 눈을 관장하는 우뇌가 글씨를 바로 인식해 행동으로 옮겼지만, 좌뇌와 우뇌 사이의 연결이 끊긴 탓에 말을 담당하는 좌뇌는 자신이 왜 걷는지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문을 모르는 좌뇌가 자신이 걷는 이유를 그럴싸하게 지어냈다는 점이다.
미국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가 쓴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클랩북스)는 이 같은 좌뇌의 '합리화'에 의구심을 던지는 책이다.
분리뇌 환자가 아니더라도 좌뇌의 자의적인 해석에 속는 사례는 많다. 가령 이성과 롤러코스터를 타면, 놀이기구로 인한 흥분을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그 예다. '해석 장치'인 좌뇌가 신경계의 흥분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의 매력에서 이유를 찾은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자아' 역시 좌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기반으로 한 생각 덩어리인 허구적 자아를 진짜 나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신념 체계' 역시 좌뇌가 옳고 그른 것을 범주화하고 당위성을 부여하며 만들어낸 것이다.
좌뇌가 끊임없이 과몰입해 해석하고 판단하는 동안 우뇌는 침묵한다. 언어로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이나 직감이 우뇌의 작용이다.
저자는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불교의 가르침과도 연결하며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주려 한다.
걱정, 분노, 불안 등 부정적인 정신 상태는 모두 좌뇌가 자아라는 허상을 지어냈기 때문에 생겼다는 점을 이해하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좌뇌가 신념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내 신념이 '옳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 '노 셀프 노 프라블럼'(No Self No Problem)도 불교 '무아'(無我) 사상과 맞닿아 있다.
좌뇌에 휘둘리지 않고 우뇌 의식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요가, 명상 등을 제안한다. 궁극적으로는 좌뇌와 우뇌 사이 '중도'에서 삶을 즐기는 것이 저자가 권장하는 삶의 전략이다.
명상을 할 땐 영적으로 단단히 뿌리박고 있음을 느끼다가도 누군가가 차에 흠집을 내면 자아가 다시 튀어나와 화를 내는 식으로, "마음의 교묘한 작용을 딱히 집착 없이 바라보는 것"이 현대판 중도다.
2019년 '자네, 좌뇌한테 속았네'라는 제목으로 한 번 출간됐다 절판됐는데 제목과 출판사를 바꿔 다시 나왔다.
김윤종 옮김. 272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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