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머신과 무인자판기 렌탈을 둘러싼 유통·렌탈·금융 구조 속에서 소상공인과 개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폴리뉴스가 금융렌탈사기피해자연합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4개 유통사를 통한 피해자는 약 700명, 피해액은 최소 73억원으로 추산된다. 다만 계약 구조가 복잡하고 채권이 금융사로 양도되는 방식이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렌탈 계약한 적 없는데 렌탈료 청구"...기기 반납 후에도 추심
자영업자 A씨는 2022년 9월경 손님 서비스용 커피머신을 알아보던 중, 커피머신 제조사 D사 홈페이지를 통해 상담을 신청했다. 이후 상담은 유통업체 M사로 연결됐다.
A씨는 "M사 직원이 '기계 설치비용 없이 운영만 하면 판매금액의 30% 이내 수익이 나온다'며 윈윈 구조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같은 달 말 M사 직원이 매장을 방문해 상담을 진행했고, 커피머신은 곧바로 설치됐다.
하지만 실제 운영 결과는 설명과 달랐다. A씨는 "커피 판매 수익보다 전기료가 더 나오는 구조였다"며 "2023년 가을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고 반품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결국 10월 31일 기기는 철거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A씨는 "12월부터 금융사 하나캐피탈로부터 렌탈료를 납부하라는 연락이 왔다"며 "기기를 이미 반납했고 렌탈 계약을 체결한 적도 없는데 왜 렌탈료를 내야 하느냐고 항의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채권 추심에 대한 압박 속에서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기기를 쓰지도 않았는데 채무자가 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 "자판기는 오지 않았다"... 300명 피해 낳은 '무인자판기' 렌탈 계약
무인 자판기 렌탈을 둘러싼 피해는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피해자 C씨에 따르면 유통업체 B홀딩스는 커피머신과 자판기 렌탈을 활용한 '무자본 창업 수익 모델'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계약 조건은 기계 1대당 약 2500만원, 계약 기간 36개월, 월 납부금 약 70만원 수준이었다. 투자금은 개인명의 계좌로 선입금한 뒤 금융사로 이체되는 구조였고 계약서에는 "B홀딩스가 렌탈료를 책임지고 납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계약 이후 상황은 달랐다. 피해자들은 "기계 설치가 곧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렌탈사 확인 전화 과정에서도 설치가 진행된 것처럼 응답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약 이후 현재까지 기계 설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계약서상 약속됐던 이익금 40% 지급 역시 한차례도 입금되지 않았고 이후 투자자들은 금융사에 남은 렌탈료 채무만 부담하게 됐다.
피해자들은 B홀딩스가 실제 총판 계약이나 기기 보유 없이 총판을 자처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캐피탈사 대출금은 업체로 넘어간 반면, 기계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월 렌탈료 납부 의무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만 남았다는 것이다.
현재 피해자들은 하나캐피탈로부터 독촉과 압류 등 채권추심 압박을 받고 있다. 피해자 측에 따르면 B홀딩스를 통해 피해를 입은 인원은 약 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 설치 확인 없이 채권이 금융사로...팩토링 구조 속 렌탈 피해 확산
유통사와 렌탈사의 폐업·연락두절 이후 다수 렌탈 사기 피해자들의 채권은 금융사로 이전돼 현재 강도 높은 추심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피해자들의 렌탈 채권은 하나캐피탈, JB우리캐피탈 등 금융사로 양도된 상태다. 이들 금융사는 신용정보회사를 통한 채권추심을 진행 중이며, 일부 렌탈사는 잔여 렌탈료 전액을 위약금으로 청구하며 소송에 나서고 있다.
이번 렌탈 사기 피해를 키운 구조적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팩토링 방식을 지목한다. 팩토링은 렌탈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을 미래 렌탈료 채권을 금융사에 매각해 선(先)현금화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계약 체결 이후 채권은 금융사로 이전되고, 소비자는 사실상 금융사와 직접적인 채무 관계에 놓이게 된다.
피해자 대표 서미진 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팩토링 구조에 대해 렌탈사나 금융사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들은 피해자는 거의 없다"며 "전자서명과 형식적인 확인 전화만으로 계약이 진행됐고 실제 장비가 설치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권이 금융사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설치되지 않은 장비, 실제와 다른 제품 정보, 유통사의 말만 믿고 체결된 계약이 반복됐지만 금융사는 단 한 번도 현장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다수 피해자들은 금융사와 신용정보회사로부터 강한 추심 압박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계약서상 설치확인서에 대해 "직접 서명한 적이 없다"는 사례도 다수 제기되고 있으며, 전대차 계약서나 사업자등록증이 본인 동의 없이 사용된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금융복지상담협회 강명수 회장은 "미래 채권을 선매입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높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분쟁 국면에서는 렌탈사와 금융사가 함께 설계한 구조의 책임이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금융 렌탈채권을 팩토링이나 유동화 방식으로 취급하는 금융회사 전반에 대한 점검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피해 규모에서도 드러난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4개 유통사를 통해서만 약 700명에 달하며 피해액은 최소 7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소송을 위해 집단적으로 모인 인원 기준으로,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거나 홀로 대응하고 있는 피해자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피해자 상당수는 신용등급이 양호한 성실한 소상공인을 비롯해 고령자, 학생 등 금융 취약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상적인 영업을 믿고 계약에 응한 이들이 렌탈사·유통사의 이탈 이후 금융채무만 떠안게 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사회적 금융사기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과 피해자 단체는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사전 심사 강화와 함께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금융당국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폴리뉴스 권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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