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자체조사를 두고 국가정보원과 쿠팡의 이견이 이어지는 가운데 로저스 대표에 이어 이재걸 부사장도 국정원의 지시로 정보 유출자와 직접 만남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은 쿠팡이 '국정원의 지시로 유출자를 만났다'고 주장한 30일 국회 청문회 도중 '지시한 일이 없다'며 로저스 대표를 위증죄로 고발해줄 것을 요청하며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
쿠팡 사태를 총괄하고 있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30일 열린 청문회에서 "어떤 정부 기관도 쿠팡의 자체조사를 지시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이재걸 쿠팡 부사장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용의자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아 접촉했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로저스 씨가 (30일 청문회에서) 국정원을 끌어 들였는데 로저스 씨와는 도저히 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이재결 부사장에게 묻는다"며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용의자가 접촉하라고 지시한 일이 있느냐"고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이 부사장은 "12월 2일 국정원으로부터 공문을 받았고 해당 사안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 협조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12월 초 국정원 측으로부터 '지금은 용의자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고 저희는 이를 국정원의 요청으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최 위원장이 "긴 얘기 필요 없다. 국정원이 쿠팡에게 용의자를 접촉하라고 먼저 지시했느냐"고 재차 묻자 이 부사장은 "국정원은 표현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그렇게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12월2일에 (국정원이) 처음 공문을 보냈고 국정원이 국가안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쿠팡은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했고, 연락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연락을 해보라고 말씀을 주셨다"며 국정원의 지시에 의해 용의자와 접촉했다고 전했다.
포렌식과 관련해 최 위원장이 "국정원이 포렌식을 하라고 지시했느냐"고 묻자 이 부사장은 "기기가 회수된 이후 처리 방안을 국정원에 문의했고, 국정원은 '회수한 다음에는 알아서 해도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포렌식을 하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진 않았지만 그런 취지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렌식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해 이 부사장은 "국정원과 여러 업체를 두고 논의가 있었고, 쿠팡이 제안한 업체와 국정원이 추천한 업체가 함께 검토됐다"며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어제 로저스 씨가 말한 것을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이다. 국정원을 끌어들여 우리 모두를 농락하는 게 용납이 안 된다"고 일침하며 지속적으로 '국정원의 직접 지시'에 대한 압박 질문을 이어가자 이 부사장은 국정원의 조사 개입 범위에는 선을 그었다.
이 부사장은 "포렌식 중 기기에서 데이터를 복사하는 '이미징 카피' 과정에 국정원 직원이 입회하지는 않았다"며 "저장된 정보가 약 3000건이고 이후 삭제됐다는 내용의 보고서 역시 쿠팡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용의자 조사와 관련해서도 "국정원은 직접 용의자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쿠팡 직원이 대신 만나달라는 요청을 했다. 국정원이 직접 취조한 사실은 없다"며 국정원 지시에 의해 용의자를 만났다"는 주장을 펼쳤다.
포렌식 업체 비용 지불을 묻는 최 위원장의 질문에 로저스 대표는 "국정원이 지불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조사 결과를 공개한 시점과 방식 모두 쿠팡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라며 "오후 2시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정식으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 질의에 앞서 진행한 질의에서 로저스 대표는 유출자와의 만남이 국정원 지시라고 주장한 것을 굽히지 않았다.
로저스 대표는 "김범석 의장을 포함한 이사회에 보고했다. 공개한 모든 내용을 보고했고, 국가기관(국정원)과 협조해 데이터와 기기를 회수하고 제출하는 등 정부와의 성공적 협조에 대해 보고했다"며 국정원 지시에 의해 정보 유출자와 만났다고 거듭 주장했다.
로저스 대표 "정보유출 용의자, 퇴사 앙심 품고 보복"
로저스 대표는 개인정보유출의 범행 동기에 대해 "의도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퇴사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보유출자가 쿠팡에 협박 메일을 보내면서 사생활 관련 정보를 첨부한 의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로저스 대표는 "보복을 위한 것"이라며 "(용의자는) 소규모의 데이터만 저장했고, 이를 삭제한 다음 제3자와 공유하지 않았다. '정보를 저장했지만,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고 삭제했다'고 말했다"며 제2의 정보 유출은 없다고 주장했다.
"새벽 물류센터 하자" 제안에 로저스 대표 "의원도 같이 해달라"
로저스 대표는 염태영 민주당 의원이 새벽배송 사망자의 노동 실태를 지적하며 "택배 야간 근무 어려움을 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자 "저는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다. 의원도 같이해주길 바란다"며 염 의원에게 '야간 택배를 같이 하자'고 역제안 하기도 했다.
청문회 태도 논란 후 주가하락…로저스 "하락 사유 모르겠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 직후 쿠팡의 주가가 하락한 것을 놓고 로저스 쿠팡 대표는 "주가 하락 사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은 "주가 하락이 쿠팡 측의 태도 논란이 불거졌던 청문회가 원인인 것 아니냐"고 묻자 로저스 대표는 이 같이 답했다.
황 의원은 "청문회 직후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미국 증시에서 쿠팡 주가가 1.35% 하락했다"며 "청문회를 보고 미국 시장도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30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쿠팡 주가는 전일 대비 1.35% 하락한 채 거래를 마감했다. 장중 한때 3%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다.
황 의원이 재차 쿠팡 매출 하락 규모를 묻자 로저스 대표는 "공개할 수 없다. 공개된 보도를 봤을 때 현재 허위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고 거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국민이 정확한 정보를 못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영훈 노동장관 "쿠팡 이직자 접촉하면 '패가망신'" 내부경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쿠팡의 과로사 은폐 의혹 조사와 관련해 쿠팡으로 이직한 노동부 직원과 현 노동부 직원의 업무 상 접촉을 막겠다고 전했다.
쿠팡으로 이직한 노동부 직원이 노동부가 실시하는 쿠팡 의혹 조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노동부는 과로사 은폐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 (쿠팡 이직 직원과) 접촉 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의하자 김 장관은 "지난 대선 직전에 5~6급 하위직 직원들이 쿠팡으로 이직했다. (직원들에게) 일차적으로 이들과 접촉하면 패가망신하게 될 것이라고 지시했다"고 답했다.
쿠팡은 노동부뿐만 아니라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기관 직원들을 채용해왔으며 이들이 쿠팡의 대관 업무를 맡으면서 전 직장인 정부부처와 국회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김 장관이 선을 그은 것이다.
주병기 공정위원장 역시 "전직 공정위 직원과의 접촉은 보고하지 않으면 징계 받게 돼 있다"며 "그 부분에서 조직 기강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징계 규정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 의원은 "쿠팡의 전방위적인 로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모든 부처가 다 알아야 한다. 전화 통화라도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쿠팡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병기 공정위원장 "쿠팡 사태, 집단소송제 검토도 가능"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쿠팡 사태와 관련해 피해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한국에 집단소송제가 없어 쿠팡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관련 법안 발의 계획을 밝혔다.
이에 주 위원장은 "집단소송제를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 공정위에서도 집단소송제에 상응하는 단체 소송제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체소송제는 특정 단체가 법 위반행위의 중지를 청구하는 제도이고, 집단소송제는 일부 피해자가 대표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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