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자영업자 김모 씨(38)는 코로나19 이후 급감한 매출을 메우기 위해 은행 대출을 늘렸다. 이후 캐피털 대출로 차입 규모를 키웠지만, 금융권 추가 대출이 막히면서 비은행권과 사채로 이동했다. 차입 경로가 바뀌는 동안 이자 부담은 급격히 불어났다. 폐업 이후에도 빚은 줄지 않았고, 통장 압류로 임금근로 전환마저 어려워지자 김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개인회생뿐이었다. 유동성 보완 수단이던 대출은 어느 순간 생존을 잠식하는 ‘독성 부채’가 됐다.
◇제도권 밖 부채의 종착지…결국 ‘개인회생’
31일 법원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은 13만6681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회생은 워크아웃이나 채무조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를 대상으로 하며, 사채와 비금융권 채무까지 포함된다. 단순한 연체 증가가 아니라, 부채 구조 전반의 질적 악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배경에는 장기 고금리와 강화된 여신 심사가 맞물린 환경 변화가 있다. 금리 인상 국면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어들자 자금 수요는 카드사·캐피털·저축은행으로 이동했다. 이후 이들 금융권에서도 밀려난 차주들은 고금리 불법 사채로 향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차입 구조가 단계적으로 하향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자 부담이 빠르게 누적됐다”며 “기존 채무조정 제도로는 이를 흡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개인회생 급증은 이런 압박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면책 이후에도 닫힌 금융 접근성…소비·신용시장 복귀 난항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소비와 신용시장에서 사실상 이탈한 상태가 장기간 이어진다. 이로 인해 향후 금리 인하 국면이 도래하더라도 체감 경기 회복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임금근로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데다, 신용 회복이 지연되면서 노동시장 재진입 자체가 막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씨의 경우처럼 통장 압류가 고용 선택지를 좁히는 구조가 반복된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개인회생 정보는 면책 이후 공적 신용정보에서는 삭제되지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최대 5년간 공유된다”며 “각 금융사 내부에 과거 거래 이력이 남아 전반적인 금융 접근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 개인회생은 재기의 출발점이 아니라 부실의 다음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개인회생 면책 결정을 받은 뒤 다시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 2019년 91건에서 2024년 355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신청 건수는 239건으로, 전년도 연간 수치의 67.3%에 달했다.
◇위기 완충 장치인가, 또 다른 부실의 출발점인가…제도 점검 시급
개인회생 신청 급증을 두고 ‘제도 남용 우려와 구조적 부채 압박을 반영해 회생 요건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변제 여력이 있음에도 회생을 선택하는 사례에 대한 비판’과 ‘현행 제도가 취약 차주의 재기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개인회생 절차에 대한 현실적 이해 부족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개인회생의 상당수가 변호사를 통해 진행되는데, 일부 홍보 과정에서 면책만 받으면 이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청년층이 구조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회생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회생 제도는 구조적 부채 위기의 완충 장치로 설계됐다. 그러나 사후 부담에 대한 설명과 복귀 경로가 함께 마련되지 않는다면, 회생 증가세는 또 다른 부실의 신호로 전환될 수 있다. 제도 설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시급한 이유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