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2025년 을사년은 격동의 한해였다. 탄핵 정국 이후 정치는 표류했고, 미·중 갈등의 파고 속에 경제는 흔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제2기 행정부의 관세·통상 압박에 국제 질서는 재편됐다. 국내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슈들이 터져 나왔다. 같은 사건을 놓고 '정의 실현'과 '정치 보복', '결단'과 '폭주'라는 상반된 해석이 맞섰다. 말은 넘쳤지만 대화는 부족했고, 주장은 쏟아졌지만 경청은 드물었다.
2026년은 육십간지로 마흔세 번째 해인 병오년(丙午年)이다. 불(火)의 기운을 상징하는 병(丙)과 말띠 오(午)가 만난 '붉은 말(赤馬)의 해'다. 말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물이고, 붉은 색은 밖으로 분출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병오년은 멈춤보다는 행동을, 주저보다는 결단을 요구하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내야 하는 해다. 다만 에너지가 강할수록 통제와 균형이 중요하다.
역사 속 병오년은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 1496년 병오사화로 사림 학자들이 대량 숙청됐고, 1846년엔 미·멕시코 전쟁이 발발해 멕시코가 국토의 절반을 잃었다. 1906년에는 일제 통감부가 설치되며 국권 침탈이 본격화됐고, 1966년에는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됐다. 2026년 한국 사회도 여러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국 안정과 민생 회복이라는 과제 앞에 서 있고, 경제계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산업구조 재편의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사회 전반에선 세대 간·계층 간 갈등을 풀어낼 새로운 대화의 틀이 절실하다.
새해에는 각종 행사들이 이어진다. 여름에는 북미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가을에는 나고야에서 아시안게임이 개최된다. 국내에선 인공지능(AI) 규제법이 시행되고, 주 52시간제의 재조정이 논의된다. 고령화 사회에 맞춘 연금 개혁과 의료보험 개편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반도체·배터리 업계는 공급망 재편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가 확대되며 안전 기준도 전면 재점검된다. 변화의 속도는 제각각이겠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멈춤보다는 이동을, 정체보다는 전진을 요구하는 시점이다.
한 해의 끝에서 새해를 바라보는 일은 조심스럽다. 기대는 과장이 되고, 낙관은 방심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망을 품어본다. 병오년이 과잉의 해가 아니라 균형의 해가 되기를, 에너지가 분열이 아니라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국운융성(國運隆盛)은 정치가 제 역할을 회복하고, 사회가 대화와 타협의 언어를 되찾을 때 시작된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은 국민의 목소리가 제도 안에서 존중되고, 갈등이 소통으로 풀릴 때 이뤄진다. 붉은 말이 힘차게 질주하되 방향을 잃지 않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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