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유난히 잠이 안 온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래전부터 달은 불면과 이상 행동, 심지어 '광기'와도 연결돼 왔다. '루나시(lunacy)'라는 말이 달을 뜻하는 라틴어 '루나(luna)'에서 나온 것도 이런 믿음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이 오래된 믿음을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피츠버그대 신경과학과 부교수이자 수면의학 전문의인 조애나 퐁-이사리야웡세(Joanna Fong-Isariyawongse)는 보름달이 인간의 수면에 미미하지만 측정 가능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정신질환을 직접 유발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이 내용은 호주 비영리 학술매체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기고를 통해 소개됐다.
◆ 보름달은 수면을 얼마나 바꿀까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보름달을 전후한 시기에는 평균 수면 시간이 약 15~30분가량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깊은 수면 단계는 감소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이런 변화는 특정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고, 대규모 인구 연구에서도 반복 확인됐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빛이다. 밝은 달빛은 생체시계를 뒤로 미루고,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뇌를 각성 상태로 유지한다. 인공조명이 적은 농촌이나 야외 환경에서는 이런 효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부 연구에서는 남성이 달이 차오르는 시기에 수면 시간이 더 줄고, 여성은 보름달 무렵 깊은 수면이 다소 감소하는 차이도 보고됐다.
다만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름달은 수면을 심각하게 방해하기보다는, 잠을 조금 얕고 짧게 만드는 요인에 그친다.
◆ 정신건강과 달의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
역사적으로 보름달은 조울증, 조현병, 간질 발작과 같은 정신·신경 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수면 부족이 취약한 정신 상태를 흔들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수면 부족 자체가 불안과 우울을 키우고, 조울증이나 조현병의 재발 위험을 높인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져 있다.
이 때문에 보름달로 인한 작은 수면 변화도 이미 취약한 사람에게는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집단 수준에서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달의 위상과 정신과 입원율, 재원 기간 사이에 일관된 상관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부 지역 연구에서는 제한적인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보름달에 정신과 병동의 신체 억제 사용이 늘었고, 중국에서는 조현병 입원이 소폭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이런 결과는 문화적 요인이나 의료 환경 차이를 배제하기 어려워, 생물학적 영향으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 달보다 더 큰 수면의 적, 밤의 빛
달의 중력이나 지자기, 기압 변화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도 제기돼 왔지만, 인체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근거는 거의 없다. 현재로서는 밤 시간대의 빛 노출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꼽힌다.
이는 현대인의 수면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스마트폰 화면, 가로등, 실내 조명은 보름달보다 훨씬 강하게 생체리듬을 흔든다. 일광절약시간제로 시계를 앞당길 때 사고 위험과 심혈관 질환이 늘어난다는 연구들이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일부 수면 전문가들은 생체리듬에 더 잘 맞는 '영구 표준시'를 주장한다.
보름달 밤에 잠이 설쳤다면 완전히 착각은 아닐 수 있다. 다만 불면이 반복된다면, 하늘보다 먼저 주변의 빛 환경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잠을 깨우는 주범은 달빛이 아니라, 손안의 화면일 가능성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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