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오늘의 주요 이슈를 사실-맥락-관점의 세 축으로 풀어드립니다. 음악에서 ‘피처링’은 협업과 도움을 뜻하고, 저널리즘의 Feature는 단순 속보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과 스토리를 다룹니다. 〈뉴스 피처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뉴스의 본질과 함의를 알기 쉽게 풀어내 여러분의 뉴스 생활을 입체적으로 피처링 해드리겠습니다.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했습니다. 김 원내대표의 사퇴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전직 보좌관들의 잇단 폭로로 여러 가지 의혹들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나왔지만 집권여당 원내대표라는 막중한 책무와 민주당 일부 지지층들의 ‘응원 폭탄 메시지’ 등으로 사퇴하지 않고 사과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사과 뒤 수습’ 시그널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면서 그의 직위 유지는 더욱 기정사실화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하루 전 터진 지방선거 공천 관련 강선우 의원과의 녹취 보도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지방선거 시의원 공천과 관련해 강선우 ‘의원측’이 김경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에게 1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김 원내대표와의 대화 녹취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공천 헌금과 관련해 현금이 오갔다는 의혹은 여의도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범죄’에 속합니다.
공천 헌금 명목으로 금품이 오간 경우 정치인이 공천을 받기 위해 돈을 받았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공천이 이루어졌는지, 금품의 대가성이 명확히 입증되면 뇌물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처벌됩니다. 뇌물죄는 수뢰액이 1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등 중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일단 돈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김경 시의원이 “그런 사실이 없다”며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고 강선우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보좌관은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금이 오간 정황이 있는 이 ‘공천 청탁’이 그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공천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강서구 지역 지방선거 시의원 후보 선정 과정에서 여타 3명의 후보들은 전부 경선이었지만 유일하게 김경 시의원만은 단수 공천을 받았습니다.
일단 수사는 강선우 의원이 실제로 돈을 받았는지 여부에 집중될 것입니다. 그 수사에 진척이 있다면 김병기 전 원내대표와의 ‘공모’까지 밝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은 김경 시의원의 연루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당시 공관위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무엇보다 강선우 의원이 공천 헌금 사실을 ‘이실직고’한 뒤 ‘왜 그랬느냐’며 질책까지 했지만 다음날 공천은 무사히 이뤄졌습니다.
현재 가장 의혹이 일고 있는 지점은 강선우 의원이 김경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에게 1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김 전 원내대표가 그것을 덮을 만한 속사정은 무엇이었는지, 양측의 첫 번째 사건 관련 대화 후 다음날 공천 확정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입니다.
당시 공관위원장은 외부인사였기 때문에 간사(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실제 공천 과정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래서 김 전 원내대표의 ‘결단’에 따라 공천이 이뤄진 정황이 있습니다. 김 전 원내대표가 현금이 오갔다면 불법이라는 사실을 강선우 의원에게 말할 정도로 그 위법성과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버젓이’ 다음날 공천을 확정시켜 준 속사정이 무엇인지가 핵심 쟁점입니다.
사실 지방선거나 총선 비례대표 선정 때 ‘현금이 오간다’는 의혹은 여의도에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지난 2012년 5월 당시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19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하여 A씨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후보자등록신청마감일인 3월 23일 5억원을 ○○당에 특별당비 명목으로 계좌 입금하고 다음날인 3월 24일에는 ○○당 간부 B씨에게 5억원을 전달하는 등 총 1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전후해서도 ‘공천 헌금 명목’으로 3억6000만 원이 오갔다는 의혹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선거법 위반에 대한 감시가 매우 엄격해졌고 시스템 공천이 도입되면서 대놓고 ‘억’ 단위의 현금이 오가는 방식은 많이 사라진 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공식적인 루트나 ‘특별당비’라는 명목의 편법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민감한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김 전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로 청와대는 원내의 중요한 우군이자 ‘교두보’를 잃어버렸습니다. 특히 민주당이 새해 첫 법안으로 꼽은 ‘2차 종합특검’을 비롯해 통일교 특검, 사법개혁 입법 등을 두고 청와대와 민주당 간 가교 역할을 하던 김 전 원내대표가 빠지게 됨으로써 청와대의 의중이 여당에 잘 반영될지 미묘한 균열지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여권은 강성 지지층의 지원을 받은 ‘친청계’(친 정청래계)가 사법 개혁 등을 두고 청와대에 비해 비타협 강경 노선을 걷고 있어 종종 계파 갈등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들과 호흡을 맞추며 ‘친명계’(친 이재명계)의 선두주자로 인식돼 왔습니다.
하지만 김 전 원내대표의 부재로 청와대와 민주당은 더욱 긴장관계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양측의 충돌과 갈등을 조율했던 다리가 유실되면서 당청간 관계는 더욱 삐걱될 것입니다. 김 전 원내대표 후임으로 거론되는 의원들은 비록 친명계도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고 지시할 만한 믿음직한 인물은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를 맡을 때, 민주당에서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 직접 친분있는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하거나 넌지시 물밑 여론을 조성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 전화를 받는 의원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믿을 만한 의원들과는 이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며 당의 여론을 조정하고 주도해나갔다. 대통령이 되면서 그렇게 직접 소통하는 일은 줄어들었을 것이고 그 역할을 대신 했던 인물이 바로 김병기 전 원내대표였다. 이제 그런 역할을 하던 의원이 빠지면서 이 대통령의 여당 관계 설정도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앞으로 통일교 특검과 사법개혁 등 산적한 이슈가 많고 지방선거까지 겹쳐 있어 청와대의 정국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복심’이 빠지면서 민주당은 더욱 정청래 대표 등을 위시한 강경파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공천 헌금 연루 의혹은 그 자체로 민주당의 도덕성 ‘인계철선’을 건드리는 위험한 이슈이기도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 교두보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것입니다.
건드리는 순간 연쇄 폭발이 시작되는 인계철선처럼 공천 헌금 의혹의 실체가 확인되는 찰나 민주당이 쌓아온 도덕적 방어선은 순식간에 붕괴될 것입니다. 그렇게 상황이 돌변해 강경파가 더욱 득세하게 되면, 이 대통령의 통합과 협치에 먹구름이 몰려올 수 있고 당에 대한 통제권도 옅어지면서 ‘이재명 개혁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습니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김병기 대체재’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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