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분위기는 인테리어가, 공간의 첫인상은 향이 좌우한다. 향은 공간을 바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향을 입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원목의 우드톤과 하얀 벽이 조화된 필자의 개인 서점도 계절과 날씨와 기분에 따라 다른 향을 도포한다. 겨울의 한복판. 한 해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연말의 느낌에는 어떤 내음이 어울릴까. 필자의 선택은 HEM의 인센스스틱, 그중에서도 '레인포레스트(비 오는 숲)'이었다.
향을 옷으로 치면 반지,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향은 비쌀수록 값을 한다. 반대로, 쌀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높은 가격이 언제나 높은 품질을 대변하지 않지만 향만큼은 이 공식에 굳건하다. 그러니 좋은 향을 사고 싶다면 필자는 이렇게 제안한다. "비싼 거 사세요."
이 지점에서 HEM 인센스스틱, 그중에서도 ‘레인포레스트(Rainforest)’ 향은 흥미로운 사례다. 인도의 대표적인 인센스 브랜드인 HEM은 전 세계 시장에서 이미 대중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화려한 브랜드 스토리나 감각적인 패키지 대신, 이들이 내세우는 무기는 단순하다. 저렴한 가격, 다양한 향, 그리고 일정한 품질.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가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게 만든다.
‘레인포레스트’라는 이름은 다소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열대우림, 빗방울이 떨어지는 나뭇잎, 습한 공기와 짙은 녹음. 과연 몇천원짜리 인센스가 이런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을까. 실제로 불을 붙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게 된다. 하지만 향을 맡는 순간, 기대를 과하게 낮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피웠을 때 올라오는 향은 의외로 차분하다. 흔히 떠올리는 인센스 특유의 자욱하고 무거운 연기가 아니다. 젖은 나무, 풀잎, 흙냄새 같은 향이 서서히 공간에 퍼진다. 한 여름의 신록이 아닌 한 겨울 상록수의 느낌이다. 인위적인 꽃 향이나 향수 같은 느낌은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향기롭다’기보다는 ‘공기가 달라진다’는 표현이 맞다. 비가 온 뒤 숲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맑지만 차갑지 않은 공기와 비슷하다.
이 향의 미덕은 과하지 않다는 데 있다. 한 개비가 타는 약 20~30분 동안 향은 공간을 지배하지 않는다. 대신 밀도를 낮춘다. 답답했던 방 안의 공기가 가벼워지고, 생각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향이 오래 남지 않기 때문에 사용 후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 명상이나 독서, 늦은 밤 혼자 있는 시간에 특히 잘 어울린다. 당연히, 필자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서점에도 잘 어우러진다.
고가의 향 제품들이 자랑하는 탑, 미들, 베이스 등의 구성과 발향력, 유지력은 이 제품의 목표가 아니다. HEM 레인포레스트는 향을 남긴다기보다, 순간을 만드는 용도다. 이 점에서 인센스라는 형식은 오히려 장점이 된다. 짧은 시간,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HEM의 인센스스틱은 향에 집착하는 사람보다는, 향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특별한 준비 없이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을 때 꺼내 쓰는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필자가 이 제품을 눈여겨보고 매번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하지 않음을 넘어 부담 없음의 매력.
HEM 인센스스틱 레인포레스트 향은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비 오는 열대우림에 있는 듯한 환상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루의 결을 조금 다르게 만든다. 도시의 답답한 공기(필자에게는 가끔 서점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고, 생각과 공간 사이에 여백을 만든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수십 번의 기분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소비가 아닐까?
값이 곧 명함인 향의 세계에서, HEM 레인포레스트는 그 선택이 꼭 비쌀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왁자지껄 술잔이 오고 가는 연말보다, 차분하고 고요하게 연말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더 없는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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