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을 기점으로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디지털 영역에서 현실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성하던 AI가 로봇·가전·모빌리티 등 몸을 가진 기기로 확장, 실제 환경을 인식·판단·제어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차세대 산업 경쟁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화면 속 추론을 넘어 물리적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단계로 평가된다. 로봇·자율주행차·산업 자동화 등 실물 산업 전반으로 적용 영역이 넓어지면서 CES 2026 전시장도 ‘움직이는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딜로이트와 삼정KPMG 등 글로벌 컨설팅 업계는 이번 CES가 생성형 AI 이후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로 기술 흐름이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 연설을 맡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로봇과 자율주행 분야를 중심으로 피지컬 AI의 중요성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AI 경쟁 구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초거대 언어모델(LLM)을 둘러싼 경쟁에서는 미국 빅테크가 앞서왔다. 반면, 피지컬 AI 단계에서는 제조·모빌리티·로봇 등 실물 산업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이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중심 전략으로 범용 생태계를 확장하는 동안, 중국은 대규모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로봇을 신속히 배치하며 데이터 확보와 현장 적용 속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은 초거대 모델 성능 경쟁보다는 실물 산업과 결합한 피지컬 AI 영역에서 차별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 중심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양사 모두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설정했지만, 접근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기기와 서비스를 잇는 ‘연결’을, LG는 물리 세계를 안정적으로 다루는 ‘제어’를 각각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피지컬 AI 전략은 기기와 서비스를 잇는 플랫폼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마트폰·TV·가전·웨어러블·로봇을 하나의 AI 경험으로 통합, 기기 간 연동을 통해 사용자 생활 전반을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CES 2026에서는 윈 호텔에 대규모 단독 전시관을 마련하고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TV와 가전, 모바일,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AI 리빙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워 초연결 생태계를 체감형으로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의 피지컬 AI 전략은 연결형 구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AP와 이미지센서, 메모리, 파운드리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로봇과 자율주행, 스마트글라스 등으로 확장 가능한 반도체 스택을 구축했다. 독자 GPU를 적용한 AP 출시를 준비하는 등 온디바이스 AI 역량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CES 기간 중 열리는 ‘삼성 기술 포럼’과 C랩 전시관은 이런 기술 전략과 생태계 확장 기조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반면 LG전자가 그리는 피지컬 AI 전략의 중심축은 ‘정밀 제어’다. 자체 개발한 AI 칩 ‘DQ-C2’를 기반으로 가전과 로봇을 기기 내부에서 판단·제어하는 온디바이스 AI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범용 AI 칩 대신 용도별 전용 칩을 선택해 제어 안정성과 최적화를 동시에 노린 전략이다.
가전에서 축적한 제어 기술을 홈 로봇과 휴머노이드로 확장하는 동시에,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장비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며 피지컬 AI 밸류체인 전반으로 보폭을 확장하고 있다. CES 2026에서 첫선을 보이는 홈 로봇 ‘LG 클로이드’는 LG전자의 피지컬 AI 전략이 지향하는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물건을 집고 사람과 교감하는 동작은 단순 시연을 넘어, 가사 노동의 실질적 자동화를 겨냥한 실행형 AI 접근이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LG전자는 범용 AI 칩 대신 자체 개발 칩을 통해 원가 구조와 제어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로봇청소기 시장과 차세대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기술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피지컬 AI 시대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반도체다. 로봇이 시각·센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즉각적인 판단과 제어를 수행하려면, 클라우드 의존도를 낮춘 온디바이스 AI 반도체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게 된다.
프로세서와 이미지센서, 센싱·아날로그 반도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로보틱스 반도체 시장은 업계에서 ‘제2의 데이터센터’로 불릴 만큼 성장성이 크다는 평가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포함한 로봇용 반도체 수요는 장기적으로 수백조 원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정책 환경 역시 피지컬 AI 확산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조다. 정부는 피지컬 AI를 국가 전략 과제로 규정하고 ‘피지컬 AI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켜 데이터 확보와 실증, 규제·표준 논의를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초거대 모델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제조·모빌리티·로봇 등 실물 산업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도메인 특화 설루션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업계에서는 피지컬 AI 경쟁이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산업 구조와 경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는 모델 성능보다 현장 데이터와 제어 기술,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플랫폼 역량이 결합해야 성과가 나는 영역”이라며 “CES 2026은 삼성과 LG처럼 같은 목표를 두고도 전혀 다른 해법을 택한 기업들의 전략적 분기점을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