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배당은 늘고 공장은 멈췄다… 인도 자본이 투자를 접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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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당은 늘고 공장은 멈췄다… 인도 자본이 투자를 접은 이유

뉴스로드 2025-12-31 07:25: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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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더 지오스트라타]
[그래픽=더 지오스트라타]

인도 기업들의 이익은 살아났다. 코로나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빠르게 회복됐고, 일부 업종에서는 사상 최대 실적이 나왔다. 정부는 법인세를 대폭 낮췄고, 생산연계 인센티브(PLI)와 공공 인프라 투자를 동시에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공장은 늘지 않았다. 민간 설비투자(CAPEX)는 정체됐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오히려 늘었다.

30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 이익 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정자본투자가 늘지 않는 현상은 수요 불확실성과 요구수익률 상승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인도 현지에서 거시경제와 지정학을 분석해온 인도 기반(india-based) 독립 싱크탱크 ‘더 지오스트라타(The Geostrata)’ 역시 이날 보고서에서, 인도 민간 자본지출 부진의 핵심 원인을 자금 조달 여건이나 세제 문제가 아니라 대중 시장 수요의 구조적 약화와 이에 따른 투자 기대수익률 하락에서 찾았다.

인도 경제에서 가계 소비는 GDP의 63%를 넘는다. 문제는 그 소비의 분포다. 상위 계층의 프리미엄·재량 소비는 성장했지만, 하위 60%의 실질임금은 지난 10년간 사실상 정체됐다. 소비는 ‘K자형’으로 쪼개졌다. 이 구조는 민간 투자의 뿌리를 약화시켰다. 제조업 투자는 틈새 소비가 아니라 대중 시장의 반복 주문을 전제로 한다. 농촌 수요가 살아나지 않자, FMCG·자동차·건설 등 CAPEX의 핵심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물량이 확실하지 않다”는 신호가 나왔다.

수요 둔화는 가동률로 드러났다. 인도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한때 70~80%를 유지했지만, 최근 65%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 선은 기업이 신규 설비를 검토하는 기준선 아래다. 이 상태에서 공장을 늘리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위험이다. 인도 기업들의 이익 회복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격은 다르다. 매출 확대에 기반한 공격적 이익이 아니라, 가격 인상·원가 절감·환율 효과·감가상각 부담 완화에 의존한 방어적 이익의 비중이 컸다.

회계적으로 보면, 이는 ROIC를 끌어올리기 어렵다. 매출이 늘지 않으면 자산 회전율이 개선되지 않고, 신규 설비는 오히려 고정비 부담을 키운다. 이익은 났지만, 그 이익이 설비로 다시 들어가 가치가 쌓일 구조는 아니었다. 현금흐름표는 더 분명하다. 영업활동현금흐름(CFO)은 증가했지만, 그 현금은 유형자산 취득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배당, 자사주 매입, 부채 상환, 인수합병(M&A)에 투입됐다.

이는 투자를 회피한 것이 아니라 투자 리스크를 계산한 결과다. 인도 기업들은 2010년대 ‘쌍둥이 대차대조표’ 위기를 겪었다. 과잉 투자와 부실 프로젝트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다. 이 경험은 경영진의 투자 기준을 바꿨다. 수요가 확실하지 않으면, 설비보다 현금이 낫다는 판단이다. 재무상태표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유형자산 증가는 둔화됐고, 현금·단기 금융자산 비중이 커졌다. 자본은 공장으로 가지 않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인도 정부는 2019년 법인세를 기존 30%대에서 22%(신규 제조업 15%)로 낮췄다. 비용 측면에서는 분명한 개선이었다. 그러나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기대수익률로 결정된다. 인도 기업들이 보는 계산식은 단순하다. 수요가 불확실하면 매출 가정이 낮아지고, 지정학·관세·물류 리스크가 커지면 할인율이 올라간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움직이면 신규 설비의 순현재가치(NPV)는 쉽게 음수로 전환된다. 세금을 깎아도 ROIC–WACC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PLI 역시 일부 전자·휴대전화 조립 부문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제조업 전반의 투자 사이클을 가동하기에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섬처럼 고립된 투자였다. 이 모든 조건이 겹치면서 인도 기업들의 선택은 하나로 모였다. CAPEX는 미래 수요에 대한 베팅이고, 배당은 불확실성을 피하는 선택이다.

ROIC가 WACC를 안정적으로 넘지 못하는 구간에서 CAPEX를 늘리면, 회계는 즉시 경고를 보낸다. 감가상각비는 늘고, 자산 회전율은 떨어지며, 경기 하강 시 손상차손 위험이 커진다. 반대로 배당과 자사주는 단기적으로 ROE를 지키고, 잉여현금을 ‘오판 리스크’에서 분리한다. 그래서 인도 기업들은 이익이 늘어도 공장을 짓지 않았다.

인도 민간 CAPEX가 다시 움직이기 위한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대중 시장 수요의 회복이다. 농촌 소득과 중간 가구 실질임금이 올라가 반복 주문이 보장돼야 가동률이 기준선을 넘는다. 둘째, 불확실성 프리미엄의 하락이다. 관세·공급망·정책 리스크가 줄어들어 기업 내부의 요구수익률이 내려가야 한다. 셋째, ROIC가 WACC를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넘는 구간이 확인돼야 한다.

IMF는 이 세 조건이 충족되기 전까지 인도의 민간 투자가 정부 주도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인도에서 배당이 늘고 CAPEX가 줄어든 것은 기업의 탐욕이 아니다. 수요·가동률·수익률을 동시에 계산한 결과다. 이익은 과거를 말하고, 투자는 미래를 산다. 지금 인도의 미래 수요는 아직 공장을 다시 돌릴 만큼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인도 자본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미 재무제표에 다 적혀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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