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신뢰의 균열: 쿠팡이 마주한 거대한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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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신뢰의 균열: 쿠팡이 마주한 거대한 파도

이데일리 2025-12-31 07:00: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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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쿠팡 사태를 둘러싼 지난 한 달은, 거대한 배가 스스로의 무게에 휘청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그간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의 혁신으로 유통 지형을 뒤흔들던 그 배는 이제, 개인정보 유출과 국민 정서에 못 미치는 대응 속에서 방향타를 잃은 듯 보인다.

쿠팡의 지난 10년은 한국 유통사(史)에 남을 실험의 연속이었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오는’ 편리함은 이제 소비자의 기본 기대치가 됐고, 전통 유통 공룡들조차 온라인 물류·배송 체계를 갈아엎으며 뒤쫓게 만들었다. 소비자는 쿠팡을 통해 새로운 생활패턴을 얻었고, 쿠팡은 그 신뢰를 바탕으로 상장과 몸집 키우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이번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과 서툰 사태 수습은 ‘기대가 배신당한 순간’으로 받아들여진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큰 실망감은 그 이후의 대응에서 비롯됐다. 사고 직후 미흡한 안내, 정부와의 마찰, 청문회를 앞두고서야 뒤늦게 나온 김범석 쿠팡Inc 의장(사진)의 사과문과 보상안, 그 보상안마저도 “마케팅 아니냐”는 비판을 부른 방식은 쿠팡이 과연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배가 암초를 스쳤다면 선장은 가장 먼저 상황을 공개하고 항로를 수정해야 한다. 미국에 있든, 국적이 무엇이든, 한국에서 수천만 고객과 수만 명의 노동자가 얽힌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책임은 주소지가 아니라 지배력과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지금 여론의 질문은 단순하다. “이 정도의 사고가 났는데, 책임지는 얼굴은 어디에 있는가.” 국회 연석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책임과 리더십이다. 배가 거친 파도에 휘말릴 때 선장이 먼저 해야 할 일은, 폭풍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항로와 지도를 다시 펼쳐보는 일이다. 쿠팡이 미국 법인과 한국 법인, 외국 국적과 국내 사업, 법인 동일인과 자연인 총수 사이를 기민하게 오가며 규제의 빈틈을 활용해 온 구조는 결국 “누가 이 배의 선장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피하려 한 시도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여기서 물은 소비자와 여론이다. 소비자는 결코 완벽한 기업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을 숨기지 않고, 드러난 허점을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고치려는 태도를 원한다.

쿠팡은 여전히 이 시장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 회사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의 유통·배송 경험은 훨씬 더 느리고 비싸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회초리는 미움이 아니라 애정에서 나온다. 하지만 쿠팡이 이 경고를 또 한 번 지나가는 악재로만 치부하고, 최소한의 법적 책임만을 따지는 방어 논리로 일관한다면, 앞으로의 파도는 훨씬 거세질 것이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쿠팡이 택할 선택은 앞으로의 10년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아직 쿠팡을 포기하지 않은 소비자의 애정 어린 회초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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