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이라는 전례 없는 확장 예산의 물결은 서울의 정부 청사를 넘어 전국 17개 시도의 금고로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거대한 재정의 물줄기 중에서도 가장 거칠고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대목은 지방교부세와 일반·지방 행정 예산이다. 행정안전부 소관 예산은 76조 9,055억 원으로 최종 확정되었으며, 이는 지방 시대라는 구호 아래 중앙의 권한과 재원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시키려는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20년의 침묵을 깬 22%의 도박
이번 예산안의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2006년 이후 20년 가까이 19.24%에 묶여 있던 지방교부세율을 22%에서 최대 23%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한 결정이다. 교부세율이 상향됨에 따라 내년에만 최소 9조 2,000억 원의 재원이 중앙에서 지방정부로 이전될 전망이다. 이는 지방정부가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사업을 설계할 수 있는 재정적 기초 체력을 보강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월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취임 후 첫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이 결정의 배경을 명확히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개선하고 전국이 고르게 발전의 기회를 누리는 균형 발전 실현을 위해 중앙과 지방이 더욱 강력하고 동등한 협력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상 가장 가까이에서 국민을 섬기는 지방정부의 역할에 비해 권한과 재정이 부족했던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을 정면으로 거론하며, 이번 예산안에 지방 우대 원칙을 철저히 반영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지특회계) 규모를 기존 3조 8,000억 원에서 10조 6,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늘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여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마중물로 설계되었다.
1조 원의 소생술: 시설에서 사람으로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 원의 운용 방식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그동안 건물을 짓고 도로를 닦는 토목 중심의 시설 투자에 머물렀던 기금의 성격이 내년부터는 사람 중심으로 전격 개편된다. 인구 유입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소프트웨어 사업에 집중 투자하여 지역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행정안전부는 지역별 투자 계획 평가를 거쳐 2026년도 기금 배분 금액을 확정하며 이번 개편이 지방 소멸 위기 극복과 국가 균형 성장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인구 감소 지역의 한 관계자는 지역 전체로 낙수 효과를 확산하려면 집행력을 높이고 광역 간 연계가 필수적이라며, 중앙정부의 인센티브 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스스로의 성과 관리 체계 고도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삭감의 공포와 법적 방어막
그러나 지방으로 흐르는 이 막대한 돈길 앞에는 세수 결손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놓여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과거 대규모 세수 결손 발생 시 중앙정부가 지방교부세를 임의로 삭감했던 전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세수 결손으로 인해 지방교부세가 삭감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비판했다. 용혜인 의원은 지방교부세법에 추경 없는 당해 연도 교부세 미지급 금지를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며 지자체 재정 평탄화 역할을 보호하고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통교부세 감액을 법 개정으로 막아 지방정부가 예기치 못한 재정 절벽에 내몰리는 일을 방지하겠다고 천명했다.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재부 측은 중앙정부의 재정 부족 상황을 이유로 지방교부세율의 급격한 상향에 우려를 표하며, 인상 폭은 국가 전체의 재정 상황을 고려해 연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728조 원이라는 확장 예산 기조 속에서도 중앙과 지방 간의 밥그릇 싸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자치의 무게를 견뎌라
지방교부세율의 인상과 76조 원의 행안부 예산은 지방정부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늘어난 재원은 자립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국가채무 비율 51.6%라는 위태로운 재정 건전성 지표 속에서 지방으로 이전된 9조 2,000억 원의 추가 재원이 지역 소멸의 방어선이 될지, 아니면 비효율적인 분산 지출의 사례로 남을지는 이제 지역의 실력에 달렸다. 중앙의 간섭은 줄었으나, 국민의 세금을 책임 있게 써야 하는 지방의 시험대는 이제 막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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