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는 가운데, 디젤추진 잠수함 수요 역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핵잠이 강대국의 억제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다수 국가는 여전히 비용과 운용 여건 등을 이유로 디젤 잠수함을 선택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산 디젤 잠수함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수출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는 지적이다.
◇ 핵잠과 병행되는 디젤 잠수함 수요
30일 시장분석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잠수함 시장은 기존 전력을 대체하기보다 핵잠과 디젤 잠수함이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핵보유국은 핵추진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비핵국가와 중견 해군 전력을 보유한 국가를 중심으로는 디젤 잠수함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부 공기 공급 없이도 잠수함이 수중에서 전력을 생산해 장기간 잠항할 수 있게 하는 공기불요추진(AIP)과 배터리 기술 발전으로 디젤 잠수함의 잠항 능력과 은밀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연안 방어와 해상교통로 통제 임무에서는 충분한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 서비스에 따르면, 디젤 추진 잠수함은 전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약 30~35% 비중을 차지하며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재래식 잠수함 수요 배경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획득비와 운용유지비, 핵연료 관리 부담, 정치·외교적 제약이 적다는 점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현재 세계 디젤 잠수함 시장에서 실제로 업체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인 국가는 캐나다와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이 중 캐나다는 노후한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디젤 잠수함을 도입하는 CPSP(Canadian Patrol Submarine Project)를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설계·건조뿐 아니라 장기 운용과 정비, 현지 산업 참여까지 포함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현재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컨소시엄이 독일 TKMS(Thyssenkrupp Marine Systems)와 함께 최종 후보군에서 경쟁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도 한국은 주요 경쟁자로 분류된다. 필리핀은 군 현대화 3단계(Horizon 3)의 일환으로 사상 처음 잠수함 전력을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프랑스의 네이벌 그룹(Naval Group), 스페인의 나반티아(Navantia) 등과 경쟁하고 있다. 이 사업은 초도 잠수함 도입이라는 점에서 함정 성능뿐 아니라 운용·정비 체계 구축 능력도 함께 평가되는 구조다.
◇ K잠수함, 세계적 수준의 성능
국내 잠수함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지난 10월 22일 진수된 해군의 첫 3600톤급 잠수함인 장영실함이다. 장영실함은 기존 도산안창호급(KSS-III 배치-I) 잠수함을 확장·개량한 배치-II 플랫폼으로 개발됐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장영실함은 배수량 약 3600톤, 길이 약 89m로 기존 도산안창호급보다 외형적으로 커져 작전 지속성과 체계 확장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잠수함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투체계와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소나체계의 성능을 개선해 정보처리 능력과 표적 탐지 능력이 향상됐고, 이에 따라 육상 표적 타격 능력도 강화됐다.
추진·에너지 체계도 개선됐다. 장영실함에는 안정성이 검증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탑재돼 수중 잠항 시간과 최대 속력 항해 시간이 늘어났다. 작전 중 부상이나 스노클링 빈도가 줄어들면서 노출 위험성도 감소했다. 여기에 함내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저감 기법을 적용해 수중방사소음이 감소했고, 은밀성도 향상됐다.
생존성 측면에서는 추진기 고장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함정 기동이 가능하도록 보조추진기를 탑재했다. 아울러 국내 기술로 생산한 장비 탑재 비중을 확대해 안정적인 운용은 물론 K방산의 기술 축적과 수출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방산 분석기관들과 전문 매체들도 한국 잠수함의 기술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미 군사전문 매체인 더 워존(TWZ)은 장보고-III(KSS-III)를 “최대 10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또는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대형 재래식 잠수함”으로 소개하며, 한국을 SLBM 운용 능력을 보유한 극소수 국가 그룹에 포함시켰다. 이 매체는 특히 배치-II가 10셀 수직발사체계(VLS), 증대된 배수량, 향상된 국산 전투체계와 소나를 갖춘 점을 들어 수출 경쟁에서도 독일·프랑스 설계와 비교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해군 전문 매체인 네이버 뉴스는 장영실함 진수 소식을 전하며 “세계적 수준의 디젤 잠수함이자 한국 해군의 핵심 전략 자산”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장영실함이 80% 이상 국산 부품을 사용하고, 리튬이온 배터리와 AIP, 저소음 설계, 개량된 전투체계를 적용한 점을 들어 기술 자립성과 수출 친화성을 함께 갖춘 사례로 분석했다.
또한 포케스트 인터네셔널도 캐나다 CPSP 관련 분석 기사에서 KSS-III를 최대 약 1만900km에 달하는 긴 항속거리와 장기 잠항 능력, 서방 무장 통합 용이성을 갖춘 플랫폼으로 소개했다. 이들 매체는 KSS-III가 캐나다가 요구하는 북극·원해 작전 조건을 충족하는 설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 패키지로 확장되는 K잠수함 수출 전략
이처럼 해외에서 축적된 평판은 한국의 잠수함 수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 단순 함정 성능 경쟁을 넘어, MRO(유지·보수·운용)와 훈련,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패키지 제안을 통해 장기 운용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잠수함이 30~40년간 운용되는 체계라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도입국의 요구와 부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기술이전 범위, 현지화 요구 수준, 정치·안보 변수도 여전히 수주 성패를 좌우할 요인으로 꼽힌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는 잠수함 수출은 다른 무기와는 다른 차원의 외교·안보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이사는 “잠수함은 전략무기 성격이 강해 외교·안보적인 부분에서 협력 관계가 기본적으로 조성돼야 하고, 전략무기로서 안보협력 관계가 선행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잠수함 도입은 통상 사업 규모가 커 도입국에서도 구매에 대한 다양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유 이사는 “잠수함 사업은 생산·기술이전·교육·훈련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협력을 통해 반대급부를 충족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산업협력이나 절충교역 형태로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옵션을 국가별로 맞춤형으로 다양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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