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분리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포함한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한 가운데, 마트산업노동조합(이하 마트노조)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며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규탄하고 나섰다.
3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마트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K의 회생안은 ‘시한부 청산 계획’”이라며 “기업을 살리기 위한 합리적 구조조정은 논의할 용의가 있지만, 대주주 책임 회피를 위한 청산에는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장은 “MBK에게 다시 홈플러스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10원 한 장 투자하지 않고 고금리 빚으로 연명하겠다는 것은 회생이 아닌 먹튀를 위한 시간 끌기”라고 지적했다.
안 지부장은 “대주주 측이 책임 있는 자구 노력을 내놓지 않는다면 홈플러스의 회생은 불가능하다”며 “정부 개입과 MBK의 자금 출연이 정상화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내년 2월 총력 투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장 상황에 대한 절박한 증언도 이어졌다. 신나라 홈플러스입점주협의회 부회장은 “일산점은 이미 불이 꺼지고 고객 동선이 차단돼 사실상 퇴거 압박을 받고 있다”며 “매출은 사라졌는데 임대료는 그대로인 데다, 쓰레기까지 점주가 치워야 하는 비정상적인 영업 환경”이라고 호소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힘을 보탰다. 을지로위원장인 민병덕 의원은 “과거 대기업 위기 때 오너들은 사재를 출연하며 책임졌다”며 “30만명의 생계가 걸린 사태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전담팀(TF)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향엽 의원은 “이번 회생안은 최대 41개 점포 폐점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포함하고 있다”며 “이는 대주주의 돈벌이를 위한 ‘주사위 돌리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욱 의원도 “MBK는 홈플러스 인수 당시부터 5조원의 빚을 안겨 기업을 망가뜨렸다”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이제는 뼈까지 발라 팔려 한다”고 비판했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약 9개월 만인 지난 29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당초 인수합병(M&A)을 통한 정상화를 목표로 했으나, 지난달 공개매각에서 본입찰 제안서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자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생계획안은 핵심 사업부인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리매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외에 향후 6년간 41개의 점포를 정리하고, 장기 근속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 방안과 약 3000억원 규모의 회생금융(DIP, Debtor-In-Possession) 대출안도 포함됐다.
법원은 향후 관계인집회 등 절차를 통해 채권단 동의를 거쳐 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유통업계에선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알짜 사업부로 거론되는 만큼, 분리매각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이달부터 직원 급여를 분할 지급하기로 결정했으며 공과금 납부, 납품 정상화도 지연되는 등 자금 여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회생안이 채권단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기업 파산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홈플러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의 판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업계에선 우선변제권을 보유한 메리츠의 경우 회생 인가 시 채권 회수 시점이 늦어질 수 있는 반면, 담보권을 실행하면 원금 확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에서 인가에 소극적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부분 매각이 이뤄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홈플러스 정상화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핵심 사업부를 분리매각할 경우 단기 위기 해소엔 도움이 되더라도, 이후 남는 본체의 수익 기반이 약화돼 인수 경쟁력이 떨어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정가에서도 ‘농협 인수론’ 등이 거론되며 홈플러스 사태 해법을 모색해 왔다.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협 회장에게 “(홈플러스 인수를) 공익적 관점에서 검토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강 회장은 “농협과 하나로마트는 지난해 각각 400억원, 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며 “농협 유통 현황이 어려워 홈플러스 인수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대형마트 산업 전반이 침체 국면에 접어든 만큼, 국가가 인수합병을 주도하기보다는 시설 개선 등 내부 개혁을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는 것이 먼저 아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이번 사태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두고 당국의 조사 및 수사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MBK가 홈플러스 관련 RCPS(상환전환우선주) 상환권(조건) 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직무정지’ 조치를 포함한 중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다만 MBK 측은 RCPS 조건을 변경하면서 국민연금의 이익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불건전 영업행위 의혹 등에 대해 연내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해 심의를 내년으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홈플러스가 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직전인 지난 2월, 1500억원이 넘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한 과정과 관련해서도 ‘사기적 부정거래’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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