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철도혁명
1830년대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산업혁명에 기폭제 역할을 한것이 있으니 그 선두주자는 철도였다. 철도야말로 근대적 시공간을 탄생시킨 주체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았다.
철도는 이동혁명이자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다
서유럽에서 증기를 이용한 공장, 거대한 배가 입항할 수 있는 항구, 커다란 도시는 이미 18세기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1830년 영국에서 철도가 등장하고 나서 유럽은 1830년대 말부터 1850년대 중반까지 ‘철도 열풍’이 불었고 마치 혈맥이나 신경세포처럼 두루 뻗어나갔다. 공장, 도시, 항구를 연결하는 순간 시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지역과 지역의 네트워킹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상품, 문화산업, 인력 이동과 해외이민, 여행 시장이 거대한 규모로 열렸다. 시장이 열리자 부르주아들은 금융자본을 활용하여 대규모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철도라는 이동혁명은 커뮤니케이션 혁명이자 문화혁명이었다. 철도는 정확한 시간을 요구함으로써 근대적 시간 개념을낳았고 ‘빠른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러 지나감으로써 공간을 축소’시켰다.
“기차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균질화시켰다. 일직선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산이건 강이건 모조리 관통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위계를 지니고 있었던 이질적인 공간들은 바로 이 직선이 가로지르는 균질적인 평면으로 변이됐”다.
궁벽한 지역일지라도 철도가 정차하는 지역에 사는 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문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무엇보다 철도가 준 상상력이었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고 서구인들 역시 기차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근대 문명의 위력에 놀랐다.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인 하이네는 1843년 파리에서 루앙과 오를레앙으로 가는 노선이 개통됐을 때 ‘무시무시한 전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 혹은 전례 없는 일이 있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다고 경탄했다. 증기에서 동력을 얻은 혁명은 철도에 이어 배에서도 일어났다. 첫 주역은 이점 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 1806~1859)이 설계한 그레이트웨스턴호로 1838년 증기기관을 장착하고 영국 브리스틀에서 뉴욕까지 15일 만에 대서양을 횡단했다.
“세계화 과정에서 첫 양적인 도약은 더 신뢰할 수 있는 항해, 적재량이 더 크고 속도도 빠른 배를 가능케 해준 증기기관, 거의 즉각적인 원거리 통신수단인 전신이 결합한 뒤에야 이뤄졌다.” 그 후로도 증기선은 1880년까지 40여 년 동안 범선과 경쟁했다. 돛과 증기는 오랜 기간 공존했다. 브루넬의 두 번째 배는 1845년에 건조된 그레이트브리튼호Great Britain로 세계 최초의 철제 증기선이었다. 그레이트브리튼호는 처녀항해에서 앞서 건조된 그레이트웨스턴호의 절반인 7일 만에 대서양을 건넜다. 놀라운 속도였다. 이처럼 증기선의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속도와 적재량에서 월등해졌다. 범선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철도는 새로운 시간 관념을 만들어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정확하게 시간을 계측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근대적 시간은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으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시간체제다. 하지만 인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동서양 모두 삶의 리듬을 태양과 달의 주기에 맞추고 살았다. ‘8시’ ‘9시’라는 시간은 물론 ‘8시 30분’이나 ‘12시 15분’ 같은 정밀한 분 단위의 시간 개념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적인 시간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간에 대한 관념은 언제생기기 시작한 것일까? 인류가 분 단위의 시간을 지키기 시작한 때가 바로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발달한 1840년대부터다. 기차가 생기기 전 대부분의 영국인은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만 구분했으나 이제 시간의 정확성이 중요해진 것이다. 우선 철도 간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표준시간에 맞춰 운행되어야 했다. 당시 철도 운영이 회사별로 이뤄지다 보니 철도 사고는 물론 기차를 놓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1840년 11월 영국의 철도회사인 그레이트 웨스턴 레일웨이GreatWestern Railway가 처음으로 그리니치 천문대의 측정 시간을 기준으로 동기화한 열차 운영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지역별로 다른 시간이 통일되기 시작하여 1880년 8월 영국에서 ‘그리니치 표준시’를 표준시간법으로 통과시켰고, 1884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본초 자오선 회의에서 마침내 세계표준시간으로 채택했다. 세계의 전 지역을 24개의 시간구역으로 분할하고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하루의 시작 시간을 고정했다. 도량형을 통일하여 표준화된 단위를 사용해서 거리와 무게를 재듯이 시간의 동질화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모든 시간을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근대적 시간은 동질화하는 과정이 필수이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채택된 것이다.
프랑스는 세계표준시간의 도입을 ‘시간 자체의 식민지화’로 여기고 거부하다 1911년에 가서 도입했다.
“시간 표준화를 추동한 가장 중요한 힘은 철도였다. 19세기 말까지 모든 도시에는 고유의 시간이 있었다. 1870년에 워싱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나치는 모든 도시에서 현지 시간을 맞추고자 200번 이상 시계를 조정해야 했다. (…중략…) 단일 시간은 처음에는 정치적 법령으로 강요된 게 아니라 민영 철도 회사들이 실행에 옮겼다. 미국은 1883년에 이르기까지 지역시간을 폐지하고 (…중략…) 4개의 표준시간대를 도입했다.”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고 모든 일에 점점 더 시간을 의식하는 서구인의 표상은 1840년 이후 반세기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시간에대한 강박관념을 당시 신조어들이 드러내고 있다. 당시 신조어들은 새롭게 태어난 시간에 대한 광적인 열기를 잘 보여준다. 시대에 뒤처진다(behind times, 1831년)는 표현은 물론이고 시간표(timetable,1838년)를 지키고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making good time, 1838년)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술할 때 시한(time limit, 1880년)이나 기간(time span, 1897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스포츠에서 자주 쓰는 하프타임(half-time, 1867년), 타임아웃(timeout,1896년)도 이때 생겨났다. 점점 시간이 사회생활에 중요한 가치를 갖다 보니 타임라인(time lines, 1876년), 시간대(time zones, 1885년)라는 용어는 물론이고 편지나 문서의 발송과 접수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는 타임스탬프(time stamp)도 생겨났다.
시간의 질서는 근대인의 상징이다. 시민들이 임무와 행동을 제때에, 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게 근대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 새로운 시간 감각을 체득한 자가 엘리트였다. 비로소 시간이근대 질서의 한 지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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