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개와 고양이는 수의학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나이에 따른 인지 기능 저하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는 인간의 치매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고령견의 인지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 '개용 텔레비전 게임'이 개발되는 등, 이른바 '개 치매'를 둘러싼 연구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 얼럿(ScienceAlert)'은 개 치매에 해당하는 증상의 특징과 구별 방법, 치료 가능성, 연구 동향 등 보호자가 알아두어야 할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했다.
노령견에게 나타나는 치매는 '인지기능장애증후군(Cognitive Dysfunction Syndrome, CDS)'으로 불리며, 일반적으로는 '개 인지기능장애(Canine Cognitive Dysfunction, CCD)'라는 용어가 더 널리 사용된다. 이 질환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며, 초기에는 보호자조차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능력과 기억력, 판단 기능 등 고등 인지 기능 전반이 점차 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에게 가장 흔한 치매인 알츠하이머병과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 방향 감각 상실·수면 장애…증상은 비특이적
연구에 따르면 CCD의 신경학적 증상은 특정 질환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비특이적이다.
대표적으로는 익숙한 공간에서 길을 잃는 방향 감각 상실, 보호자나 다른 동물과의 관계 변화, 배변 실수 증가, 불안과 초조, 수면–각성 주기 이상 등이 꼽힌다.
일부 개는 물그릇 위치를 잊거나 보호자를 피하는 반면,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유 없이 짖거나 울고, 밤에 잠들지 못한 채 집 안을 배회하는 행동도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노화로 오해되기 쉽지만, 인지 기능 저하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증상이 분명해질수록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단계라는 점이다. 한 연구는 "임상적·행동적 증상이 뚜렷해질 무렵에는 이미 광범위한 신경 퇴행이 진행된 상태이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보호자의 좌절과 스트레스를 키우고, 반려견의 삶의 질 역시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 익숙한 공간에서 길을 잃거나 벽과 모퉁이에 멈춰 서는 행동
- 보호자나 가족에게 무관심해지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집착하는 변화
- 낮에 잠만 자고 밤에 배회하거나 짖는 수면 패턴 변화
- 배변 장소를 잊고 실수가 잦아짐
- 활동량이 눈에 띄게 줄거나 목적 없는 반복 행동
- 분리 불안이 심해지거나 소리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모습
◆ 치료는 제한적…훈련이 대안으로 주목
현재까지 CCD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계단과 같은 위험 공간을 차단하거나, 산책 횟수를 늘려 배변 사고를 줄이고, 멜라토닌 등 일부 약물을 활용해 증상을 완화하는 방식이 보조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세레길린(selegiline)이 노령견 인지기능장애 치료제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효과를 두고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이 약물은 사람의 치매 치료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약물 치료의 한계 속에서 행동 및 인지 자극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수의과대학 연구팀은 고령견을 대상으로 한 인지 훈련이 인지 기능 유지와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를 이끄는 수의사 트레이시 테일러(Tracey Taylor)는 2024년 "11세 이상 노령견의 최대 60%가 인지기능 저하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집 안에서 길을 잃거나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행동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신호"라고 말했다.
◆ 사람 치매 연구의 '자연 모델'로 떠오른 개
CCD는 CADES, CCAS, CCDR 등 여러 평가 척도를 통해 진단되고 있지만, 이를 완전히 표준화한 검사나 확실한 생체지표는 아직 없다.
최근 7세 이상 개 70마리를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는 약 66%가 인지기능 저하를 보였고, 이 가운데 11%는 중증으로 분류됐다. 연구에 따라 사용된 평가 척도가 달라 유병률 수치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CCD로 사망한 개의 뇌에서 인간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병리적 특징이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단백질 엉킴과 아밀로이드 플라크 축적 등 공통된 변화가 확인된다.
이 때문에 개는 사람 치매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동물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2025년 9월 미국 신경과학자들이 발표한 한 관점 논문은 개가 설치류보다 치매 연구에 더 적합한 모델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개는 사람과 같은 생활 환경과 위험 요인을 공유하며, 실험실처럼 인위적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사는 동물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에는 워싱턴대학교의 '도그 에이징 프로젝트(Dog Aging Project)'에 참여한 연구자들도 포함돼 있다. 연구팀은 "개 인지기능장애가 인간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대형 동물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면, 향후 연구 성과는 인간 의학 발전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노령견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즈워크와 같은 감각 자극 놀이, 새로운 산책 환경 경험, 항산화 성분이 포함된 식단 등 꾸준한 두뇌 자극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노령견 치매 연구는 반려동물의 노년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뇌 노화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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