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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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문화매거진 2025-12-30 11:26:14 신고

▲ 글꼴에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하는 에코 폰트(나눔글꼴에코)
▲ 글꼴에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하는 에코 폰트(나눔글꼴에코)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업을 하는 일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아니, 무엇이든 뭔가를 하는 일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물건을 사고 버리는 모든 일에는 무엇인가가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도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그렇다고 작업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뭘 하면 안 될까?

내가 사용하는 재료를 들여다보면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눈에 밟힌다. 특히나 전시 준비를 하며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시기에는 내가 만들어 낸 쓰레기에 스스로 놀란다. 미술관과 작가들이 야기시키는 오염을 기업이 만드는 오염과 비교하면 비율적으로 미미하겠지만, 크지 않은 작업실에 내 몸통만 하게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대치하듯 마주하면 양심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이다.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택배를 시킨다. 박스와 과포장되어 나오는 뽁뽁이들 포장을 뜯으며, 조금씩 상해 재사용이 어려운 그것들을 버리러 나가는 길에 마음속의 눈을 질끈 감는다. 작업실에서 마신 일회용 커피잔들, 구매한 물건의 다양한 비닐 포장들, 일회용으로 사용한 마스크와 종이컵들. 결국 쓰레기들만이 나를 떠나간다. 나를 떠나가는 것은 쓰레기밖에 되지 못한다.

환경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매년 만들고 보관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진다. 스스로 최대한 양심적인 작업을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환경이라는 문제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업을 한다는 그 행위 안에서 분명 모든 것과 계속 부딪힌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크게 휘두르며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만들고 보관하기를 계속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속에서 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머리에 한 번 들어온 생각은 사라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선에서 계속 고민해야 한다.

지금으로서 가능한 방법은 일회용품을 사용하되 다회용기처럼 많이 쓰는 방식을 택했다. 종이컵에 바를 정자를 새겨가며 최소 다섯 번 사용을 목표로 한다. 100개의 종이컵을 구매하여 500번을 쓴다면 4번의 구매와 4번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다. 또는 카페에서 사용한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을 모은다. 그것을 깨끗하게 씻어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입하느냐에 따라 작업의 과정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환경을 생각한 방식의 전시를 고민한다. 가져갈 수 있는 다량의 플로우 맵과 서문을 없애고 전시장 내에서 볼 수 있는 배치용 서문 몇 개와 큐알코드를 함께 놓아둔다든지, 전시의 레터링 자체를 그리거나 직접 쓰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도록에 잉크를 줄일 수 있는 에코서체를 사용하고, 종이는 재생지를 선택하는 것, 좌대를 대여해서 제작하지 않고 재사용을 선택하는 방들이 전시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 모든 선택은 최선의 방식과 같은 아쉬운 답이 아닌 가장 좋은 접근이다.

전시 주제로 대문짝만하게 다루기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그것들이 은은하게 고려하게 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필요한 선택들이 내 삶에도 은은하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오늘도 쓰레기를 버리고 또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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