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은 현장 상황 100% 반영 불가…확인 절차 필요한 이유"
"환자 수용능력 확인하는 절차 없으면 '깜깜이 이송'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늦은 저녁 119에 신고된 임신 25주차 30대 여성 경련 환자. 이 환자는 한국형 병원 전 응급환자 분류 도구인 '프리-케이타스'(PRE-KTAS)에서 최고 수준의 중증응급환자로 평가됐지만 119구급대가 확인한 인근 병원 여섯 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119구급상황관리센터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하 광역상황실)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광역상황실은 119구급대에서 병원을 찾지 못한 중증 응급환자의 병원을 찾아 이송을 돕는 업무 등을 맡는다.
광역상황실에서는 분만 등 산부인과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물색했다. 가용 병상과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 시스템에 공개된 수치 외에 당장 현장에서 의료진을 투입할 수 있는지와 같은 '보이지 않는' 병원 상황도 파악했다.
환자 수용능력이 확인되자마자 광역상황실 상황요원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와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S병원 수용 가능하다고 합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119구급대는 곧장 S병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광역상황실에 실제 접수된 응급실 미수용 중증응급환자의 병원 선정 과정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응급실 환자 미수용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장 환자가 길 위에서 전전하지 않도록 일단 병원에서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환자가 적절한 처치와 배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제대로 선정하는 것도 이송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일각에선 119 구급대가 병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내 '응급실 수용 능력' 확인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와 관련 수용능력 확인은 환자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구급대가 병원에 환자의 상태 등을 알리고 수용능력을 확인하도록 한다.
응급의료 최전선에 있는 광역상황실과 응급의학 전문가들도 응급실 뺑뺑이를 단순한 이송 문제만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29일 서울 중구 광역상황실에서 기자들에게 "응급의료 상황판에 적힌 병상 등은 현재 가용한 응급의료 자원정보에 대해 알려주는 1차 지표"라면서도 "실제로 당장 환자 진료가 가능한지는 응급실에 있는 의사들이 판단해야 할 요소가 있다"고 강조했다.
병상이 남았다고 표시되더라도 모든 의료진이 심정지 등 특정 환자에 투입됐다거나, 갑자기 한꺼번에 중증 환자가 몰려 추가 환자를 받을 경우 진료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 병상 등 숫자로 보이는 정보와는 별개로 환자에 대한 처치와 배후 진료가 적절히 제공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상황판에는) 응급 시술이 가능하다고 돼 있더라도 갑작스러운 현장의 상황 변화와 같은 변수는 전산이 100% 반영할 수 없다"며 "당장 현장에서 응급의료를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파악해야 하는 게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구급대원도 부득이하게 전화하는 것이고, 광역상황실도 자료를 기반으로 판단하되 한 번 더 전화해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광역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상황 요원들은 한쪽 벽면에 설치된 12개 모니터를 통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병상 가용률 등 응급의료 자원정보를 확인하는 동시에 병원과 분주히 통화하고 있었다. 숫자가 알려주지 않는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서다.
의료계에서도 이송 시 응급실의 환자 수용능력을 사전에 확인하는 건 당연한 절차라며 '응급실 뺑뺑이'를 막겠다고 기존 시스템을 흔들기보다는 차츰 보완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사전 연락과 수용능력 확인 없이 구급대원이 직권으로 병원을 선정하는 경우는 없다"며 "수용능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그저 가까운 의료기관에 환자를 보내는 '깜깜이 이송'이 벌어질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대한응급의학회 역시 "응급의료인력과 시설, 119구급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응급 환자에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사전에 수용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현재 필요한 건 응급실 미수용을 막기 위한 '백업 플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용능력 확인을 유지하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응급실 뺑뺑이 방지를 위한 보완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 응급실에서 수용이 어려운 중증응급환자의 경우 119구급상황관리센터뿐 아니라 광역상황실에서 의료기관의 진료 능력, 이송 거리를 고려한 수용 권고, 해당 사례 형사적 면책 제공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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