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불공정거래에 대한 제재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꾼다.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처럼 경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는 과징금을 대폭 상향해 실질적인 억지력을 확보하는 반면, 고의성이 낮거나 단순 행정상 실수에 해당하는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완화하거나 과태료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형벌 위주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적 책임'을 중심에 둔 새로운 제재 체계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은 총 331개 규정을 대상으로 하며, 향후 입법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핵심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금전 제재 강화다. 먼저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 경영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행위에 대해 부과되는 정액 과징금 한도가 기존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10배 상향된다. 그동안은 형사처벌이 우선 적용되는 구조였지만, 앞으로는 시정명령을 먼저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벌과 함께 대폭 강화된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대리점이 다른 업체와 거래하는 것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 역시 동일한 틀로 개편된다. 시정명령을 우선하고, 불이행 시 형사처벌과 최대 50억원의 과징금을 병과하는 체계다. 하도급 거래에서도 변화가 크다. 발주자로부터 선급금을 받고도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 기존처럼 위반 즉시 형사처벌을 하는 대신 시정명령을 거쳐 불이행 시 최대 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가맹사업 분야에서도 제재 수위가 높아진다. 가맹본부가 정보공개서를 제공한 뒤 14일 이내에 가맹계약을 체결하는 위법 행위에 대해 부과되는 과징금 한도는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된다. 즉각적인 형벌 대신 시정 기회를 부여하되, 이를 무시할 경우 강한 경제적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다.
시장 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담합 행위에 대한 처벌도 한층 강화된다. 가격이나 생산량을 사전에 합의해 경쟁을 제한할 경우 부과되는 정액 과징금 한도는 4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아진다.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정률 과징금 역시 최대 20%에서 30%로 상향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 남용 행위에 대해서도 과징금 상한을 매출액의 6% 또는 20억원에서 최대 20% 또는 100억원으로 크게 끌어올린다.
반복 위반 사업자에 대한 가중 제재도 강화된다. 과거에는 1차례 이상 위반 시 과징금 가중률이 최대 20%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40~50%까지 적용된다. 4차례 이상 위반한 경우에는 과징금을 최대 100%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기준을 높인다. 지주회사 및 대기업집단 관련 탈법 행위, 의결권 제한 규정 위반 등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새로 도입해 형벌을 대체한다.
정보보호 분야에서도 제재 방식이 달라진다. 이동통신사 등이 위치정보 유출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적용되던 형사처벌은 폐지하는 대신 과징금 한도를 기존 4억원에서 20억원으로 상향한다. 형벌보다는 기업에 직접적인 부담이 되는 경제적 제재가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반영됐다.
이번 개편에는 최근 정부 수뇌부의 문제의식도 깊게 반영됐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불공정행위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형사처벌 중심의 제재가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지 못한다는 인식이 공유됐고, 위반 시 기업의 경영에 직접 타격을 주는 수준의 과징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반대로 단순 실수나 경미한 위반에 대해서는 처벌을 완화한다. 자동차 제작사가 온실가스 배출 관련 서류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경우 적용되던 벌금은 과태료로 전환된다. 금융 관련 명칭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경우에도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조정한다. 동물미용업이나 식품제조업에서의 단순 신고 누락, 캠핑카 튜닝 후 검사 미이행 등도 형벌을 폐지하거나 완화해 행정질서벌 중심으로 바뀐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2차 개편에 이어 추가적인 경제형벌 정비 과제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강한 제재가 필요한 영역과 완화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규제의 실효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형벌에 의존하던 규제 방식에서 벗어나, 위반 행위의 성격에 맞춘 정교한 제재 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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