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2025결산] 조용했지만, 권력과 정치는 확실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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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2025결산] 조용했지만, 권력과 정치는 확실히 달라졌다

직썰 2025-12-30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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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이 연내 청와대로 복귀할 예정인 가운데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이 연내 청와대로 복귀할 예정인 가운데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전경. [연합뉴스]

[직썰 / 안중열 기자] 2025년 한국 정치는 유난히 조용했다. 정권을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도, 국정을 멈춰 세울 만한 극단적 충돌도 없었다. 국회 앞 대규모 집회도, 대통령의 연이은 강경 메시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 뉴스의 볼륨은 줄었고, 긴급 속보가 차지하던 자리는 정책 설명 자료와 집행 점검 브리핑이 대신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정치의 공백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권력의 언어가 달라졌고, 정치가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디까지 집행됐는가’, ‘누가 책임지고 관리했는가’가 정치의 중심 질문으로 이동한 한 해였다.

이 변화는 연말 한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12월 29일 오전 9시 13분,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청와대 본관으로 조용히 출근했다. 차량이 경내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이 모였지만, 별도의 메시지도 즉석 발언도 없었다. 흰색·빨간색·파란색이 배색된 이른바 ‘통합 넥타이’만이 정치적 상징을 대신했다. 참모들과 짧은 차담회를 가진 뒤 대통령의 첫 일정은 국가위기관리센터 점검이었다. 선언보다 점검이, 메시지보다 작동이 앞서는 장면이었다.

정권 교체 1년 차를 맞은 2025년, 한국 정치는 말의 경쟁에서 조정과 관리의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선언과 충돌이 주목을 끌던 국면을 지나, 국정이 실제로 굴러가고 있는지 여부가 평가의 기준이 됐다.

◇말하는 대통령에서, 움직이는 정부로

이재명 정부 1년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대통령의 ‘존재감’이 아니라 ‘등장 방식’이었다. 대통령의 직접 발언 빈도와 정치적 장면 연출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정책 설명과 집행의 전면에는 정부 부처가 섰다.

2025년 상반기 편성된 ‘경기 진작 및 민생 안정 추가경정예산’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과거처럼 대통령 담화나 단일 메시지로 요약되지 않았다. 대신 추경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부담 완화 ▲에너지·공공요금 부담 대응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등으로 세분화됐고, 각 항목은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나눠 설명했다.

재원 조달 방식, 집행 속도, 대상 기준 역시 함께 공개됐다. 언제 집행되고, 어디까지 집행되며, 집행 이후 무엇을 점검할 것인지가 정책 설명의 일부로 포함됐다. ‘결단의 장면’보다 ‘집행의 구조’가 앞에 나섰다.

정치는 여전히 대통령 중심 구조를 유지했지만, 운영의 전면에는 행정부가 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의 한마디보다 부처 간 조정 결과와 집행 일정이 더 자주 뉴스가 된 한 해였다.

◇청와대 이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의 국면으로

2025년 청와대 이전 논의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분위기는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출범 직후의 선언 경쟁이나 상징 정치가 아니라, 이미 한 차례 실험을 거친 이후의 정리 단계에 가까웠다.

윤석열 정부 시기 개방된 청와대는 시민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대통령 집무는 용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일정 부분 정착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 구조를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실제 국정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불편과 비효율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2025년 상반기부터 정부 내부에서는 ▲청와대 일부 공간의 업무 기능 복원 ▲대통령실 조직 재배치 ▲부처 간 이동 동선 개선 등이 단계적으로 검토됐다. 이미 개방된 공간은 유지하되, 회의·조정·위기 대응이 필요한 구역만 선별적으로 손보는 방식이다. ‘전면 복귀’도, ‘현 체제 고수’도 아닌 중간 지점이었다.

하반기로 갈수록 논의는 더욱 구체화됐다. 대통령 집무 공간은 최소화하되, 국정 상황 점검과 위기 대응 기능은 청와대 중심으로 모으는 방안이 테이블에 올랐다. 용산 대통령실은 외빈 접견과 상징적 역할을 유지하는 방향이 함께 검토됐다. 정부는 이를 두고 “권위를 되돌리려는 선택이 아니라, 국정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혼선을 줄이기 위한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흐름은 연말에 하나의 장면으로 귀결됐다.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출근했지만, 이는 체제 전환을 알리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봉황기가 다시 게양됐지만, 대통령의 일정은 내부 점검과 안보 대비 태세 확인으로 채워졌다. 청와대 복귀는 정치적 결단의 상징이 아니라, 1년간 누적된 운영 판단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국회, 속도보다 ‘과정’이 남은 해

2025년 국회는 오랜만에 정치의 중심 무대로 복귀했다. 상법 개정 논의가 대표적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둘러싸고 재계와 시민사회가 정면으로 충돌했지만, 결론은 밀어붙이기식 처리도, 장기 표류도 아니었다.

논의의 초점은 이사의 책임을 단순히 강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사회 판단 과정의 명확화 ▲의사결정 기록 강화 ▲책임 기준의 단계적 정리로 옮겨갔다. 법안의 성패보다, 어떤 기준과 논리로 결론에 이르렀는지가 더 주목받았다.

금융 규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량 규제를 유지할 것이냐의 단순한 찬반을 넘어, DSR 단계 조정, 실수요자 구분 기준, 금융 접근 회복 경로 등 보다 세밀한 논의로 확장됐다. 2025년 국회에서 평가는 ‘통과 여부’보다 논의의 방식과 구조에 주어졌다.

◇선언이 아닌, 결과로 평가받은 정책

2025년은 정책이 말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기 시작한 해였다.

재정 정책은 추경 집행과 함께 중장기 재정 관리 방향을 동시에 제시하며 “지금 쓰는 재정이 언제까지 가능한가”를 함께 설명했다. 단기 경기 부양과 중장기 건전성 관리가 분리되지 않았다.

금융 분야에서는 총량 규제로 인한 비은행권 이동이 수치로 확인되면서, 규제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이 동시에 평가 대상이 됐다.

산업 정책 역시 반도체·이차전지 지원 논의가 보조금 경쟁에서 벗어나, 공급망 안정, 인력 확보, 정책 예측 가능성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정책은 더 이상 선언만으로 평가받지 않았다. 지속될 수 있는 구조인지가 기준이 됐다.

◇야당의 한계, 그리고 달라진 정치의 채점표

야당은 견제에서는 존재감을 보였지만, 대안 제시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추경을 ‘선심성’이라고 비판했지만 대체 재원은 제시되지 않았고, 금융 규제를 문제 삼았지만 현실적인 대안 설계는 나오지 않았다.

정권 교체 이후 정책 언어를 새로 만들지 못한 채, 비판은 남았지만 집행 가능한 그림은 축적되지 않아 박한 평가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 사이 정치의 채점표는 달라졌다. 누가 더 크게 싸웠는가가 아니라, 정책이 실제로 돌아갔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이 이뤄졌는가,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인가가 질문이 됐다. 청와대 이전 역시 이 기준 위에 놓였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이 어디에서 더 안정적으로 작동했는가의 문제였다.

2025년의 정치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권력과 정치의 작동 방식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연말, 대통령의 청와대 출근조차 선언이 아닌 점검으로 채워진 변화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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