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수출’ 7천억달러 시대…“첨단산업 중심 ‘질적 고도화’가 이끌어”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미국의 관세부과와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어려운 통상 환경을 뚫고 한국 수출이 ‘7000억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2000년), 독일(2003년), 중국(2005년), 일본(2007년), 네덜란드(2018년)에 이어 세계 6번째다. 프랑스는 지난 2008년 한국보다 먼저 60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29일 현재 7000억달러는 넘지 못한 상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수출이 내수 부진 속에서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경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물량 확대에 기댄 성과가 아닌 반도체·선박·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의 질적 고도화가 수출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한국 수출의 성장엔진으로 존재감을 굳혔다. 이날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올해 11월 누적 기준 1526억달러를 기록하며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1419억달러)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 규모로 전체 수출의 23.8%를 차지하고 있다. 개별 흑자 규모가 844억달러로, 전체(658억달러)를 웃돈다. 반도체 초황기 속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는 물론 범용 D램 양쪽으로 ‘쌍끌이’했다.

자동차는 미국 관세의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자동차는 하이브리드차 등 고부가가치 차종을 앞세워 올해 역대 최대 실적 경신이 유력하다. 올해 1~11월 누적 자동차 수출액은 660억달러로, 종전 최대 실적인 2023년 709억달러를 뛰어넘기까지 48억 3000만달러를 남겨둔 상태다.

K-푸드·뷰티 등 소비재와 전기기기 등 유망품목들도 힘을 보탰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화장품 수출은 11월 누적 104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1위 실적을 견인했다.

외국인직접투자도 역대 최대 실적을 앞두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4.6% 감소했지만 하반기엔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정책과 연계된 투자가 대폭 유입되며 반전을 이끌어 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 수출의 7000억달러 돌파는 단순한 수치적 신기록을 넘어 미국의 관세 부과 등 각국의 보호무역 확산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여전히 건재함을 입증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내년에도 이어가기 위해 신흥국과의 공급망 연계 강화 및 비관세 장벽에 대한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 원장은 “AI와 친환경 전환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 신흥국과의 공급망 연계를 강화하고 비관세 장벽에 대한 대응 역량을 높여 수출 성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구조적 기반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타결됐지만, 후속 사안인 비관세 장벽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통상·산업 정책 전반에 불확실성이 누적될 수 있다”며 “일정한 로드맵을 갖고 관리·합의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