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로 지명된 것을 두고 “무거운 책임감이라고 표현하기도 부족하다”고 한 이 후보자는 한국 경제를 두고 단기적인 퍼펙트스톰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중장기적인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칫 위기임을 알면서도 해결책이 없어 위험을 마주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면서다.
기획재정부와 분리 출범하는 기획처의 과제와 할 일을 제시했지만, 이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어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 관문부터 가시밭길이 예고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기획처, 미래 향한 전략기획 컨트롤타워”
이 후보자는 지명 후 하루 만인 29일 임시 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첫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퍼펙트스톰 상황으로 고물가·고환율의 이중고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짚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이슈로는 △인구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소멸 등 5가지를 꼽았다. 이어 “갑자기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드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모두 알고 있고 오랫동안 많은 경보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 위협에 빠지게 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는 미국 경제학자 미셸 워커가 2013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발생 가능성이 높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사건임에도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맞게 되는 위험을 뜻한다.
이 후보자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기획예산처가 태어난 것”이라며 “기획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기획 컨트롤타워로서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 부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지출은 찾아내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게 하고, 그 투자가 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적 선순환을 기획처가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내란 옹호, 확장재정 비판 ‘전력’ 걸림돌
기획처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의지를 다졌지만, 이 후보자는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라는 난제부터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친정 격인 국민의힘은 ‘배신자’로 낙인찍어 제명한 데 이어 송곳검증을 벼르고 있고, 여권에서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인사 기용은 포용이 아닌 국정원칙의 파기’란 비판이 나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내란 등의 발언에 관한 충분한 소명과 단절 의사 표명을 이 후보자에 요구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보수 경제학자인 이 후보자가 이재명 정부와 제대로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후보자는 재정건전성 확보, 선별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보편복지 기조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셈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 몸 담았던 때엔 라디오인터뷰를 통해 “이재명 후보의 말은 듣기엔 사이다 같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걱정되는 얘기들”이라며 “이재명브랜드가 붙은 정책들에서 방향전환해야 한다”고 기본소득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13조원 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발행하고, 내년에만 2341억원을 투입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등 이재명 정부가 펴온 예산 운용방향에 ‘동조화’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붙는다. 이 후보자는 이날 확장재정에 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엔 “따로 얘기할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 후보자는 첫 출근 당일부터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옹호 전력, 현 정부의 현금성 지원과 확장재정을 비판해왔던 과거의 입장과 소신 등 때문에 청문회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과반 의석인 여당도 우호세력이라 마음 놓아선 안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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