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태이 작가] 변경된 음악으로 제작된 작품이 한국에서 다시 공식적인 상영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2024년도 창의인재동반사업 결과를 발표하는 연남 CGV 상영회에서는 이전의 컬래버레이션 음악을 사용했었다. 5월부터 11월까지 제작했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작품이었지만, 뮤지션 측의 연유로 다른 음원을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 2024년 12월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상상치도 못할 기나긴 사투 끝에 작업이 마무리되어 유튜브에 게재되었건만,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해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떳떳하다고 말하기엔 부족했지만, 거의 나의 한 해가 녹아든 애증의 기록임에는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잘 들여다보지도 못했던 메일함에서 뜻밖의 축하 메일을 발견했다. 완성한 작품이 아까워 배급사를 통해 공모 지원을 요청했던 선택이 뒤늦게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에 열리는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SIPFF)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성소수자 국제 영화제다.
2년 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품고 있던 시절에 퀴어 이야기를 써 언젠가는 꼭 초청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바로 그 영화제였다. 번 아웃인지, 아니면 그냥 게으름인지 모를 상태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나 자신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과분한 소식이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데스크톱 앞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문장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걸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 어떤 목소리가 지금의 세상에 필요할지, 그리고 내 이야기도 그 안에 포함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었다. 그럴 시간에 글자 한 글자라도 더 쓰고, 몸이라도 움직여야 했지만, 자기 회의로 가득 찬 우울감이 원망스러웠다. 그랬던 순간에 받은 연락이라 더더욱 기뻐할 줄도 몰랐나 보다.
하지만 내가 꺾일 때마다 “자신감을 가져!”라며 손을 내밀어 주는 어떤 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길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배려 하나로 모든 것이 회복될 리는 없었지만, 세상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자리를 내어주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5년 12월의 끝자락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나를 공격하는 질문들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2025년을 보내버린다면, 한국에서의 기회를 내게 건네준 모든 이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아직도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부르기에는 낯부끄러운 나날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마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미완의 시절을 통과하고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평생 기억 장치’ 같은 기관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아쉽게도 그런 건 없기 때문에, 연말을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추위 속에 대충 몸을 감싸 안고, 카페에 앉아 글자를 토닥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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