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해외 원정출산으로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무늬만 외국인' 혹은 '검은머리 외국인(이하 검머외)'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인이 비싼 집들을 쓸어간다" "중국인 집주인, 한국인 세입자" 등 애꿎은 중국인을 집값 폭등의 원흉으로 지목했던 세간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 통계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 부동산을 매입한 외국인 중에는 우리나라 부유층이 해외 원정출산 국가로 가장 선호하는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캐나다는 '출생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국 내에서 태어난 모든 신생아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은 당장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일정 연령이 되면 한 쪽 국적만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데 원정출산 목적 자체가 해외 국적 취득에 있다 보니 한국 국적을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한국 부동산을 매입한 외국인이 미국·캐나다 국적을 가진 '무늬만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외국인 주택 거래 통계에서 국적만 외국인들을 따로 분리하고 그들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일고 있다.
외국인 서울 집값 매수 1·2위 미국·캐나다…"원정출산 선호 국적과 동일, 과연 우연일까"
법원등기부등본 등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 최고 집값을 자랑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서 집합건물을 매수한 외국인 10명 중 7명은 미국·캐나다인이었다. 한강벨트에서 아파트를 매수한 외국인 중엔 미국인(313명)이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캐나다인(93명)이 이었다. 반면 중국인 비중은 10명 중 1명 수준에 그쳤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구로(134명), 금천(116명), 영등포(92명) 강서(64명), 광진(43명), 관악(36명) 등 중국인 밀집지역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값 진앙지'인 한강벨트 지역 아파트를 중국인이 대거 매입한 탓에 우리나라 집값 전체가 급등했다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단순히 드러난 사실 외에 이번 조사 결과의 이면에 주목하는 견해들이 하나 둘 등장해 이목을 쏠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견해는 우리나라 집값 상승의 진짜 주범이 외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 이른바 '검머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내로라하는 지역 아파트를 매입한 외국인들 국적이 우리나라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원정출산 국가와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외교당국 등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국적 부여를 법적으로 허가하는 선진국은 미국과 캐나다뿐이다. 과거에는 호주나 뉴질랜드도 원정출산 국가로 각광받았으나 국적법 개정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자국 국민일 경우에만 국적을 부여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우리나라 부유층들이 미국·캐나다 원정출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중국적자로서의 권리와 혜택은 증진시키고 한국에서의 의무와 부담은 줄이거나 회피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중국적자가 되면 비자 발급 없이 해당 국가의 입국 및 거주가 자유로워지고 한국 내 외국인 학교 입학도 가능하다. 남자일 경우엔 성인이 된 후 미국·캐나다 국적을 선택하면 한국의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상속·증여세와 같은 세금 문제에서도 세제혜택이 높은 국가를 선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두 나라의 다문화 가정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 원정출산에 대한 이렇다 할 통계 자료는 전무한 수준이다. 미국과 캐나다 역시 외국인 원정출산을 따로 조사하진 않고 있다. 다만 과거 캐나다의 한 국제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통해 그 심각성이 일부 드러나긴 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2008~2018년 사이 캐나다 내 비거주자 출산율은 2010년 1354건에서 2018년 4099건으로 약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당시 비거주자 출산 여성의 국적을 따로 조사하진 않았지만 조사 대상 병원 중 상위에 오른 병원 대부분은 중국, 한국 등 아시아계 밀집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부촌에 널리고 널린 '검머외' 부모들, 자녀 역시 원정출산 선택 비중 높아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외국인 중 상당수가 '검머외'라는 주장은 강남구·서초구·송파구·용산구 등 서울의 부유층 밀집 지역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양지은 씨(36·여)는 "주변에 부모 때부터 줄곧 서초구에 거주해 온 분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는 원정출산으로 외국인 국적을 취득한 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며 "아빠가 '검머외'인 경우 대부분 군대를 가지 않았고 지금도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그 집 또한 다문화 가정으로 분류되고 있는 경우도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얼마 전 부모 재산을 물려받아 집을 산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외국인이 한국 부동산을 산 게 되는 것 아니냐"라며 "통계나 이런 걸 집계할 때 외국인과 '검머외'를 정확히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이윤정 씨(39·여)는 "아이 유치원 친구 중에 캐나다나 괌, 하와이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가진 아이들을 많이 봤는데 그런 아이들은 부모 또한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자신이 원정출산으로 외국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까지 같은 과정을 밟게 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게 많다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실제로 한 아이의 경우 조부모가 집을 여러 채 가진 재력가인데 그 집은 아빠가 정확하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원 여러 곳을 보내면서 준비하고 있다"며 "그 돈이 전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하거니와 국제학교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박진석 씨(38·남)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압구정동에서 나고 자랐는데 주변 동네 친구들 중 외국인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여럿 있다"며 "대부분 토종 외국인은 아니고 원정출산을 통해 괌이나 하와이, 캐나다, LA 등에서 태어난 친구들이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 중에 강남구 내에 본인 명의 부동산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 친구들을 볼 때 마다 드는 의문은 '저런 친구들은 도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집을 샀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끔 뉴스에서 외국인들의 부동산 매입 관련 내용을 볼 때 중국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론 '검머외'가 대부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 싶다"고 덧붙였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외국인 주택 거래 통계에서 국적만 외국인들을 따로 분리해 그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상대적 박탈감 해소를 위한 사회 정의 확립 차원에서라도 '검머외' 주택 구입자들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외국인 부동산 거래를 국적 기준으로만 단순 분류할 경우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며 "상속·증여를 통해 주택을 취득한 '국적만 외국인'과 순수 외국인을 구분해 통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에도 강남 등 고가 주택 거래 지역에서는 해외 원정출산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들의 부동산 매매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공정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자금 출처에 대한 조사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