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72] 빛으로 사람을 머물게 하는 법: 더현대 서울에서 만난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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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72] 빛으로 사람을 머물게 하는 법: 더현대 서울에서 만난 알폰스 무하

문화매거진 2025-12-29 11:18: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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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여의도 더현대 서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알폰스 무하 전시는 익숙한 이름에서 출발하지만, 관람이 끝날 무렵에는 전혀 다른 인물로 다가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아르누보 포스터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이 전시는 무하를 시각으로 세계관을 설계한 예술가로 다시 부른다. 전시의 부제처럼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빛과 꿈으로 사람을 머물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작가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익숙함’이다. 부드러운 곡선, 꽃과 식물 문양, 여성의 얼굴을 감싸는 원형의 후광. 그러나 몇 걸음만 더 다가가면, 그 익숙함은 곧 낯섦으로 변한다. 인쇄물로 수없이 소비되었던 이미지들이 실물의 크기와 재료감을 입었을 때, 무하의 그림은 더 이상 장식이 아니라 공간이 된다. 종이 위에 인쇄된 선과 색이 아니라, 한 겹 한 겹 쌓인 색층과 손의 흔적이 눈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비로소 질문하게 된다.

“이 그림은 왜 이렇게 오래 보게 되는 걸까?”

무하의 화면에는 언제나 ‘빛’이 있다. 그것은 실제 광원을 묘사한 빛이라기보다 인물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한 조형적 빛에 가깝다. 머리 뒤에 둥글게 배치된 후광, 인물을 감싸는 장식의 원, 반복되는 패턴의 리듬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끌어당긴다. 이 빛은 인물을 성화처럼 띄우지만, 동시에 관람자를 그 안으로 초대한다. 무하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감상자가 아니라 잠시 그 세계에 ‘머무는 사람’이 된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이번 전시가 인상적인 이유는 무하의 작업을 ‘예쁜 포스터’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의 일관된 시각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 판화, 드로잉뿐 아니라 회화와 장식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무하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시선에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이야기는 설명이 아니라 구조와 분위기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무하의 장식은 결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인물과 장식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지탱한다. 인물의 윤곽은 장식에 의해 또렷해지고, 장식은 인물 덕분에 살아 움직인다. 이 관계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관람자의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림을 ‘읽기’ 전에 먼저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을 늘린다. 무하가 살았던 인쇄의 시대에 이 전략은 강력했을 것이다. 수많은 이미지 사이에서 그의 포스터가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도 바로 이 감정의 설계 덕분이었을 테니까.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더현대 서울이라는 장소성 역시 이 전시를 흥미롭게 만든다. 쇼핑몰이라는 빠른 소비의 공간 한가운데에서, 무하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패턴을 따라 눈을 움직이며, 한 장의 이미지 앞에서 예상보다 오래 머문다. 이는 무하가 꿈꾸었던 예술의 역할과도 닮아있다. 그는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들의 감각을 깨우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그림은 여전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이 전시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시대에 예술은 어떻게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가. 빠르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오늘, 무하의 작업은 오히려 천천히 스며드는 설득의 힘을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장식적이지만 비어 있지 않은 화면. 그 안에는 사람을 배려하는 시선과,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는 생각한다. 무하의 장식은 결코 예쁜 테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과 사람 사이에 놓인 따뜻한 프레임이었고, 관람자가 조금 더 머물 수 있도록 건네는 조용한 초대장이었다. 어쩌면 예술의 힘이란, 바로 그 ‘잠깐 더 머물게 하는 시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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