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회사를 다니는 동생은 25일부터 여행을 간다고 했다. 하루는 연차를 내고 주말 내리 여행을 간다는 소식에 내 마음도 들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작가들은 연휴에 맞춰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했다. 수입원으로 삼는 일이 잠시 멈추는 그날엔 드디어 작업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하는 얼굴이 조금 들떠 보인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한다. 공휴일, 쉬는 날 개념이 전혀 없는 예술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달력과 시간 속에 산다는 것을 또 이렇게 알게 된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작가님도 12월 24일에 다들 미팅을 못한다는 말에 의아해하다가 나중에서야 그날이 이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를 꺼낸다. 그들과 함께하던 그 자리에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25일에는 쉴 것이다.
25일이 더 바쁜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도 26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해버렸다. 24일과 25일은 길에서 나오는 캐럴을 귀동냥하듯 들으며 잔잔하게 지내고 26일에 맛난 음식을 먹을 예정이다. 그래도 25일의 작은 기념으로 초록과 빨강이 작게라도 들어간 옷을 골라 입었다. 25일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리며 창문 밖을 구경했다. 길거리에 평소보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에 카페 앉아 잠깐 글을 정리해 보는 순간 옆자리 누군가는 독일어책을 번역하고 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생각을 생각해 본다. 빠른 걸음에서 느껴지는 추위와 귀까지 덮은 모자의 털에서 느껴지는 포근함이 여기저기서 뿅뿅거린다. 기분이 좋다.
연말의 어느 날 사람들이 나들이 나온 도시를 헤매다가 한 작가의 작업실 연말 파티에 참석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작업실에서는 남다른 안정감을 느끼며 튼튼한 렉과 어떻게 서 있는지 궁금한 작업들 그리고 공구 사이를 돌아다닌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몸에 맞춰 편하게 앉거나 서고, 질문하는 모습, 더운 사람은 옷을 벗고 추운 사람은 옷을 입는 그런 어수선함은 예술인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내 작업실과는 조금 다른 그 공간에서 누군가의 작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고 아주 조금 경이롭다. 큰 작업과 작업실을 스스로가 부러워하는 마음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이어간다.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모두들 언제 쉬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주말도 공휴일도 없이 지내는 그들은 불쑥 어딘가로 떠나 있기도 한다. 매일이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친구들의 작업실에 짐이 늘어난다. 매년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지내며 더 약해지고 살이 빠지기는 하지만 한 공간에서 오래 있는 작가들은 그들의 주머니 사정과는 별개로 안정적으로 보인다.
잠시 연말을 기념하듯 모두가 따뜻한 집에서 행복한 작업을 지속하는 모습을 아무런 현실감 없이 떠올려 본다. 크리스마스에 방영되는 영화의 결말처럼 모든 게 따뜻하게만 다가온다. 28일에는 작업실에 가야겠다. 그전까지 이 뜨끈한 연말을 손에서 흘러내리는 슬라임처럼 즐겨볼 것이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