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일하는사람법', 역시나 '노동약자법'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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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일하는사람법', 역시나 '노동약자법' 시즌2

프레시안 2025-12-29 08:27:47 신고

3줄요약

지난 글(☞바로가기 : 이재명 정부 '일하는사람법'은 尹 정부 '노동약자법' 시즌 2에 불과하다)이 나간 이후 <인사이드경제>는 여러 루트를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론의 메시지를 접했다. "설마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의 법을 베끼겠느냐?" "일하는사람법은 노동약자지원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언제나 그렇지만 반론은 적극 환영한다.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법이며, 사물과 현상은 단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누구나 자기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본 '단면'을 얘기하는데 거기서 마주침이 있다면 우리는 '입체'를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지금까지의 토론은 '비대칭적'이었다. 반론의 메시지를 전해온 분들 대부분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 내용의 대강을 알고 있는 분들이었다. 아무리 설명을 자세히 해준다 해도 법안을 구경조차 해보지 않은 나와의 논쟁은 대칭적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비대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성탄 전야에 발의된 '일하는사람법'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 대표발의로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 제정안'이 제출되었고 법안 발의 기자회견이 전격 이뤄지게 되었다. 법안만 공개되면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쟁이 가능해질 테니 훨씬 좋은 조건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법안 발의 기자회견 장면을 직관한 후, 언론사 기자들에게 수소문해 보도자료를 구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딸랑 2쪽짜리 보도자료엔 법안 취지만 간단히 담겼을 뿐 법안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법안 자료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았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배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와 국회 관계자를 통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동일했다. "곧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올 테니 그 자료를 참조하시라."

그런데 발의 날짜가 크리스마스 이브 아닌가. 법안 제출 즉시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날은 크리스마스 휴일이니 당연히 업무를 하지 않을 테고 말이다. 성탄절 다음날인 26일 내내 기다렸지만 그날도 법안은 올라오지 않았다.

언론에 법안 발의 관련 기사가 몇 가지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 보도자료를 베낀 수준이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이고 노동 관련 1호 법안이라고 대대적인 홍보가 되었던 법안인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시점은 왜 이렇게 뜸을 들인단 말인가.

노동약자 지원법과의 비교 대조표

의안정보시스템에 법안이 올라온 것을 확인한 시점은 휴일인 27일 오전이었다. 법안을 펼쳐들자마자 1회독을 했고, 곧바로 노동약자 지원법과 조항 하나하나를 비교하고 대조해 표를 만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일하는사람권리기본법과 노동약자지원법 조항 대조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간단히 말해 이재명 정부의 '일하는사람법'은 윤석열 정부 '노동약자법'이라는 바탕 위에 몇 가지 조항을 추가한 형식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제목이 겹치는 조항들의 경우 대부분 토씨 하나까지 같을 정도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약자'라는 단어를 '일하는 사람'으로 바꾸기만 하면 말이다.

▲ 일하는사람기본법과 노동약자지원법의 권익 보호 조항 비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예를 들어 2개의 법안에서 '권익 보호'라는 항목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본 조항의 문구만이 아니라 각 호까지 완벽하게 닮았다. 아니 이 정도면 베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친자확인소송'을 벌여도 될 정도로 2개의 법안은 DNA 동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위원회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분쟁을 조정·중재한다는 내용까지 완벽하게 동일하다.

노동약자법 위에 실효성 없는 조항 쌓기

물론 이재명 정부 일하는사람법에는 윤석열의 노동약자법에 없는 조항들이 몇 가지 있다. 이를테면 균등처우(7조), 성희롱·괴롭힘 금지 및 예방(8조), 안전과 건강의 보호(9조), 사회보험 등(14조), 단체 등의 결성(16조) 등의 조항들이다. 그런데 이들 조항 역시 구체적인 문구를 살펴보면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제9조(안전과 건강의 보호) ① 사업자는 일하는 사람이 일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적정한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③ 국가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일하는 사람이나 사업자에게 지원할 수 있다.

제14조(사회보험 등) ① 사업자는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사회보험과 관련하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

② 사업자는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제도와 관련하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

제16조(단체 등의 결성 등) 일하는 사람은 노무제공조건의 개선,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관련 법령에 따라 단체 등을 결성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바르게 살자' 수준의 문구 아닌가. 물론 몇 가지 조항은 "다음 각 호의 행위(성희롱·괴롭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8조), "합리적 이유 없이 일하는 사람과의 노무제공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거나 해지하여서는 아니된다"(11조)라는 문구를 갖고 있지만, 이 조항을 위반한다 해도 벌칙이 없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니 실효성 제로(Zero)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이 나올 것을 예상했는지 정부 관료들과 몇몇 교수들은 이 법률이 '기본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법이란 통상 해당 정책·법률 영역에서 기본 이념과 원칙을 제시하는 법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벌칙이나 처벌조항을 많이 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충법이 기본법을 참칭?

하지만 법 이름에 '기본법'이라는 라벨을 붙이면 자동으로 기본법이 되는 걸까? 법학 전공자가 아니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접근해보자. 한국에 '기본법' 글자 붙은 법만 70여 개가 된다. 노동관계 법령만 해도 '고용정책기본법' '근로복지기본법' '양성평등기본법' 등이 존재한다.

'기본법'의 경우 보통 조문 중에 '다른 법률과의 관계'라는 조항을 두어 "다른 법률 제정 또는 개정할 때 이 법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게 된다. 그래야만 해당 정책·법률 영역에서 기본 이념과 원칙을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법률과 '일하는사람법' 문구를 한번 비교해보자.

▲ 일하는사람권리기본법과 다른 기본법의 다른 법률과의 관계 조항 비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다른 기본법들과 일하는사람법에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3조 1항에서는 다른 기본법과 동일한 문구를 담고 있지만, 2항에서는 다른 노동관계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법령을 우선 적용한다고 적어놓은 것이다. 앞에서는 '기본법'이라 선언했는데 뒤에서는 '보충적으로만 적용되는 일반법'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꼴이다.

기본법이면서 보충법이다? 조상이면서 후손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이거 완전히 족보 꼬이는 수준의 법률 아닌가. 대체 이런 일은 왜 벌어지게 된 것일까. 놀랍게도 그 답 역시 '노동약자 지원법'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의 문구를 정확히 베껴온 것이다.

노동약자 지원법 제5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노동약자의 지원 및 보호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

이쯤 되면 정말 이재명 정부 '일하는사람법'과 윤석열의 '노동약자 지원법'은 DNA 검사를 맡겨봐야 하는 수준이 아닐까? 대체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 무슨 이유로 저 법을 반대했던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기 시작한다. 올해는 여기까지, 그 의문점들은 해가 바뀌고 나서 해결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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