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쿠팡의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한 달을 넘겼음에도 ‘탈팡(쿠팡 탈퇴)’ 움직임이 좀처럼 본격화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걱정과 분노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일상을 실제로 흔들 만큼 ‘실현된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행동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의 불안이 곧바로 이용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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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이번 사태의 체감 충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던 배경으로 ‘이미 한 차례 겪어본 경험’을 꼽았다. 그는 “지난 4월 SK텔레콤(017670)(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이미 겪지 않았느냐”며 “만약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면 충격이 훨씬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 없는 숫자임에도 대형 개인정보 사고를 한 번 경험한 사회에서 충격이 누적되며 완충 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불안은 있었지만, 공포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에서 분노 여론이 거센 데 비해 실제 이용 행동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해선 소비자 심리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분노에 공감하는 것과 행동을 바꾸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욕은 할 수 있고 동조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 생활의 편리함을 누가 대신 책임져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분노의 표출과 플랫폼 이탈은 별개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쿠팡이 이미 ‘생활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맞벌이 부부나 아이가 있는 집, 노약자나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정에선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며 “그 전쟁에서 보급이 끊기면 일상이 바로 흔들린다. 쿠팡은 그 보급 역할을 한다”고 비유했다. 다음 날 필요한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생활 리듬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에서, 탈퇴는 단순한 플랫폼 이동이 아니라 생활 방식의 전환이 된다.
락인(이용자가 특정 서비스에 묶이는 현상)을 강화하는 요인으로는 멤버십 기반의 ‘묶음 구조’를 들었다. 그는 “쇼핑, 배달,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까지 결합된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멤버십 비용을 낸 뒤 그 안에서 최대한 효율을 뽑아내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며 “이탈은 곧 손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배송 속도나 반품 편의성, 가격 경쟁력에서 체감되는 차이 역시 이탈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쿠팡을 포기 후 이동하는 전환 비용이 단순 금전 부담을 넘어선다고 했다. 새로운 플랫폼을 고르고 가입하고 다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노력, 시행착오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쿠팡을 떠난다는 건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일”이라며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확실성이 전환 비용을 더 키운다”고 짚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이 영구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 교수는 “현재의 불안과 분노는 가스처럼 잠복해 있는 상태”라며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재산적·금융적 손실로 현실화되거나, 더 심각한 실체적 피해로 이어질 경우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험이 ‘실현되는 순간’이 소비자 행동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개인정보 사고를 넘어, 소비자가 플랫폼에 얼마나 깊이 종속돼 있는지를 드러낸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불만이 있어도 기존 선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분노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편의성이고, 행동 변화는 그 균형이 깨질 때 나타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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