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백년지대계라는 수식어는 재정의 영역에서만큼은 거대한 숫자의 압박으로 치환된다. 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 설계도에서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압도적인 팽창 뒤를 잇는 가장 큰 축은 단연 교육이다. 지난 12월 2일, 국회는 정부안보다 945억 원을 증액한 106조 3,607억 원 규모의 교육부 예산을 최종 확정했다. 이는 한국 교육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이자, 학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라는 인구학적 절벽 앞에서 던진 국가의 전략적 베팅이다.
이번 교육 예산의 핵심은 단순히 지출의 규모를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교실로의 전환, 보육과 교육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의 본격화, 그리고 중산층까지 넓힌 국가장학금의 파격적인 확대라는 세 가지 거대 과제가 106조 원의 재정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교부금의 딜레마: 학생은 줄어드는데 재정은 71조 원
이번 교육 예산에서 가장 논쟁적인 항목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2026년도 교부금 규모는 71.7조 원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2025년 추가경정예산 대비로는 1.4조 원 늘어난 수치지만, 2025년 본예산과 비교하면 오히려 약 6,000억 원이 줄어든 성적표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20.79%)을 자동으로 떼어 지방 교육청에 주는 현행 방식은 세수 흐름에 따라 교육 재정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이 경직된 재정 구조를 두고 날 선 비판이 오갔다. 서울시립대학교 김우철 교수는 2026년 예산안 토론회에서 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 재편이나 정책 기조의 실질적 변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재정 총량 관리의 부재를 경고했다. 특히 학생 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교부금을 내국세에 연동해 퍼주는 방식이 국가 재정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경제학적 우려가 제기되었다.
전문가들은 세수가 현 상태로 경기가 안 좋을 경우 내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방 교육 재정의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교육 현장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은 교원 보수가 수년간 희생되었다며 내년 7% 이상의 인상을 요구하는 등, 줄어든 본예산 규모에 대해 유·초·중등 교육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국회는 인문사회 기초연구소 지원 확대와 거점국립대 투자를 위해 예산을 소폭 증액하며 타협점을 찾았다.
중산층까지 번진 장학금의 정치학
2026년 교육 예산의 가장 선명한 특징 중 하나는 고등교육 복지의 전격적인 확대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을 소득 9구간 이하 대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기존 100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50%나 폭증하며, 이를 위해 3,878억 원의 예산이 신규 증액되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만 명 넘는 대학생 가운데 9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이 50만 명에 달한다며 이들을 위한 장학금 절벽을 해소하기 위한 증액이라고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9구간 학생들은 연간 100만 원 범위 안에서 지원을 받게 되며, 다자녀 가구의 경우 첫째와 둘째는 연 최대 135만 원, 셋째 이상은 등록금 전액 수준인 200만 원까지 보장받는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중산층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큰 호응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 등록금 규제 완화에 따른 부담 전가 우려와 맞물려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현실에 맞는 장학금 지원 대상 조정과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728조 원이라는 확장 예산의 기조 속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지역 대학 육성(RISE)과 첨단 인재 양성이라는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영유아특별회계와 유보통합의 첫발
2026년은 한국 교육 행정사에 있어 보육과 교육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회는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영유아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교육세의 60%를 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 법안은 2026년 1월 1일부터 5년간 효력을 가지며, 기존의 영유아 보육 및 교육 지원 사업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아 안정적인 재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국회 심의 과정에서 보육교직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514억 원이 추가 반영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아반 교사의 근무 환경 개선비와 유아반 교사의 처우 개선비가 각각 월 2만 원씩 인상되어 현장의 시급한 목소리를 반영했다. 또한 0~2세 기관 보육료 단가 인상률을 정부안(3%)보다 높은 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192억 원을 추가 투입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 의결 후 2026년도 교육부 예산은 이재명 정부의 교육 분야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주요 과제를 중심으로 편성했다며, 내년도 예산을 밑거름 삼아 국정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과도한 조기 사교육 실태 파악을 위해 8.7억 원의 조사 비용을 신규 반영했다는 사실은, 재정 투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경쟁 구조를 방증한다.
106조 원의 교육 예산은 단순한 지출의 나열이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의 생존 전략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에 달하는 재정적 압박 속에서도 장학금을 넓히고 보육 현장을 강화한 것은 교육이 경제 선순환의 마지막 마중물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학령 인구가 사라지는 교실에 투입되는 71조 원의 교부금이 과연 시대의 흐름과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106조 원의 베팅이 미래 세대에게 튼튼한 사다리가 될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 청구서가 될지는 인공지능 교실과 통합된 보육 현장에서 나올 성과가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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