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끝자락에서 한 해를 돌아보니 이 시간은 유난히 많은 감정을 남긴다.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가 여러 차례 크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국민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국내적으로는 국가 운영의 근간을 위협하는 혼란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과 분노, 허탈함을 느꼈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일상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한 해를 보내며 다시 배워야 했다.
그러나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른 아침 일터로 향했고 누군가는 가게의 불을 켜며 하루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가족의 하루를 조용히 지켜냈다. 사회가 크게 흔들릴수록 삶은 오히려 더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2025년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상처는 분명했고 마음은 지쳤지만 삶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말 없이 이어진 하루들이 서로를 떠받치며 이 시간을 견뎌냈다.
국제사회 역시 격동의 흐름 속에 있었다. 전쟁과 갈등,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세계는 쉽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 한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 또한 한때 흔들렸지만 그 와중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한국을 찾았고 한국은 다시 국제무대의 중심에서 조명받는 장면을 연출했다.
위기는 국가의 취약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나라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2025년은 한국 사회의 불안과 저력을 동시에 드러낸 기사회생(起死回生),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증시는 점차 회복 기미를 보이지만 체감경기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차갑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서민의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숫자와 지표가 전하는 신호와 달리 삶의 현장은 조심스럽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섣부른 낙관도, 끝없는 비관도 아니다. 현실을 중시하며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도록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태도다. 사회가 조금 더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연말은 늘 평가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정리의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 해가 실패로 남는 것은 아니다. 버텨낸 하루, 포기하지 않은 선택,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쓴 마음들 역시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잃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지켜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함께 시간을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다.
2025년 한 해를 보내며 다시 내일을 생각한다. 2026년 새해가 모든 것을 단번에 바꾸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공간은 분명히 남아 있다. 희망은 거창한 약속에서 오기보다 다시 ‘일어서겠다’는 조용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을 때 시간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다가온다.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던’ 하루들이 쌓여 새로운 시간을 조금씩 밀어 올린다. 내일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건너온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 시작은 이미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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