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부자들'... 푸틴은 전쟁 속에서 어떻게 러시아 억만장자들을 자신의 편에 서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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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부자들'... 푸틴은 전쟁 속에서 어떻게 러시아 억만장자들을 자신의 편에 서게 했나?

BBC News 코리아 2025-12-28 17:36:50 신고

지난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대기업 대표들과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LEXEY NIKOLSKY/SPUTNIK/AFP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명령한 날, 크렘린궁으로 주요 기업인들을 불러 모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억만장자 수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25년 동안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러시아의 부유한 특권계층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모두 잃었다.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서방의 제재는 초부유층을 그의 반대 세력으로 돌려세우는 데 실패했고 '당근과 채찍' 전략은 이들을 침묵하는 지지자로 만들었다.

전직 은행 억만장자인 올레그 팅코프는 이 '채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전쟁을 "미친 짓"이라고 비판한 다음 날, 크렘린에서 그의 경영진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러시아 2위 은행이었던 팅코프 은행은 창업자와의 모든 연계를 끊지 않으면 국유화될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팅코프는 "가격을 두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마치 인질과 같았죠. 제시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협상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안에, 전투기 엔진용 니켈을 공급하는 현재 러시아 5위 부호 블라디미르 포타닌과 연관된 회사가 은행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팅코프에 따르면 은행은 실제 가치의 3%에 불과한 가격에 팔렸다.

결국 팅코프는 자신이 가졌던 재산 가운데 약 90억 달러(약 13조 원)를 잃었고, 러시아를 떠났다.

흰색 야구모자와 회색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나무 아래에서 웃고 있다.
Chris Graythen/Getty Images
올레그 팅코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잃고 러시아를 떠났다.

푸틴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소련 붕괴 이후 몇 년 동안 일부 러시아인들은 국가가 소유하던 대규모 기업들을 인수하고, 막 태동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회를 활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들이 새로 손에 쥔 부는 정치적 혼란의 시기에 영향력과 권력을 가져다줬고, 사람들은 그들을 '올리가르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올리가르히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오르는 데 자신이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그는 용서를 구했다.

지난 2012년, 그는 "난 그 안에서 미래의 탐욕스러운 폭군과 권력 찬탈자를 보지 못했다. 자유를 짓밟고 러시아의 발전을 멈춰 세울 인물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베레조프스키가 자신의 역할을 과장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당시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이 최고 권력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사과문을 남긴 지 1년 조금 지난 뒤, 베레조프스키는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때쯤이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린 상태였다.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성이 주택 앞 계단에 서 있다.
Hulton Archive/Getty Images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영국으로 망명한 뒤, 2013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래서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명령한 지 몇 시간 뒤 푸틴이 러시아의 최고 부자들을 크렘린궁으로 불렀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알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효과적으로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기자는 자리에 모인 억만장자들이 "창백하고 잠을 못 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침공 이전의 준비 기간은 러시아 억만장자들에게 매우 나쁜 시기였고, 침공 직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2년 4월까지 1년 사이에 러시아의 억만장자 수는 전쟁과 제재, 약세를 보인 루블화의 영향으로 117명에서 83명으로 줄었다. 이들이 잃은 재산은 총 2630억 달러(약 379조 원)로, 1인당 평균 27% 감소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은 푸틴의 전쟁 경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전쟁에 대한 막대한 지출은 러시아 경제 성장을 자극해 2023년과 2024년에 연 4%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방위 산업 계약으로 직접 수십억 달러를 벌지 않는 초부유층에게도 도움이 됐다.

포브스 자산팀의 자코모 토니니에 따르면 2024년에는 러시아 억만장자의 절반 이상이 군에 물자를 공급하는 데 관여하거나, 침공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다.

그는 BBC에 "크렘린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포함되지도 않는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누구든 정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올해 포브스 리스트에서 러시아의 억만장자 수는 사상 최대인 140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총자산은 5800억 달러(약 836조 원)로 침공 직전 해에 기록된 역대 최고치보다 불과 30억 달러(약 4.3조 원) 모자랐다.

푸틴은 충성파들이 이익을 얻도록 허용하는 한편, 노선을 따르지 않은 이들은 꾸준히 처벌해 왔다.

러시아인들은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한때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했던 그는 2001년 친민주주의 조직을 출범한 뒤 10년 동안 복역했다.

2003년 1월 15일, 석유 재벌이자 러시아 최고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철창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이 모스크바 법정과 연결된 TV 화면에 나타났다.
AFP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한때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지만, 투옥됐고 그의 석유회사 유코스는 국유화됐다.

침공 이후 러시아의 초부유층 대부분은 침묵을 지켰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극소수는 나라를 떠나야 했으며 재산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했다.

러시아 최상위 부유층은 푸틴의 전쟁 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22년 2월 24일 크렘린궁에 소집된 37명의 기업인을 포함해 다수가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서방이 이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크렘린에 등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러시아 억만장자들 사이에 여전히 부가 유지되고 공개적인 반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목표는 실패한 셈이다.

혹시 누군가가 막대한 재산을 들고 서방으로 망명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제재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알렉산드르 콜안드르는 "서방은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국기 아래로 집결'하도록 만들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BBC에 말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배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계획이나 아이디어, 명확한 경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자산은 제재를 받고, 계좌는 동결됐으며, 재산은 압류됐죠. 이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푸틴이 억만장자들과 그들의 자산, 자금을 동원해 러시아 전쟁 경제를 지원하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해외 기업들이 잇따라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생긴 공백은 크렘린과 가까운 기업인들이 값싸게 이윤 높은 자산을 사들이며 빠르게 메웠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드라 프로코펭코는 이것이 새로운 "영향력 있고 활동적인 충성파의 군대"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한다.

"이들의 미래는 러시아와 서방 간 대립이 계속되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전 소유주가 돌아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브스의 자코모 토니니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이런 방식으로 러시아에서 새로운 억만장자 11명이 탄생했다.

전쟁과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지도자는 자국의 핵심 엘리트들을 여전히 단단히 옥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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