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단종은 늘 박제된 슬픔이었다. 어린 나이에 왕좌에서 밀려나 숙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끝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군주. 역사 교과서 속의 단종은 권력 암투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말'이었고, 왕위에서 내려온 뒤의 시간은 그저 몇 줄의 건조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2025년 2월,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그 요약된 문장들 사이의 '여백'을 파고든다. 영화는 승자의 기록이 집중하는 계유정난도, 찬탈의 피바람도 아닌, 왕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인간 '이홍위'의 시간을 비춘다. 권력의 중심부보다 그 바깥에 머무는 이들을 줄곧 포착해온 장항준과, 침묵 속에 서늘한 감정을 응축해온 배우 박지훈의 만남. 이 조합이 단종 '이후'를 묻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온도는 벌써부터 뜨겁다.
사건이 아닌 삶으로: 왜 ‘단종 이후’인가
〈왕과 사는 남자〉가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건 이야기가 발을 딛고 선 지점이다. 영화는 모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포스트 에필로그'를 택했다. 왕이었으나 더 이상 왕일 수 없게 된 이홍위가 유배지 청령포로 향하며 마주하는 삶의 얼굴들. 박박 긁어낸 역사적 기록물에서는 차마 보이지 않던 '살아있음'의 감각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비운'이라는 익숙한 수식어 뒤에 가려져 있던 청년의 고뇌와 선택을 상상한다는 것. 이는 전형적인 사극의 문법에서 기분 좋게 이탈하는 시도다. 권력이 증발한 자리에도 삶은 끈덕지게 계속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지독한 시간을 한 인간이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묻는 질문. 영화는 단종을 신화화된 영웅으로 박제하는 대신, 우리 곁의 연약하고도 단단한 인간으로 내려앉힌다.
장항준이 쓰는 ‘가장자리’의 사극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은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로운 궤도에 올린다. 〈라이터를 켜라〉부터 〈리바운드〉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 혹은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감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해왔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사극은 거대한 정치 담론보다는 밀도 높은 '생활의 결'에 가깝다. 왕위를 잃은 단종과 그를 맞이한 마을 사람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 희망과 체념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극의 중심을 잡는다. 역사를 재현하기보다 기록의 빈칸을 인본주의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작업. 장항준 특유의 온기 어린 시선이 '사극'이라는 차가운 외피를 입었을 때 터져 나올 시너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지훈과 유해진, 결핍과 실리가 맞부딪히는 순간
결국 이 영화의 정서는 인물 간의 관계라는 화룡점정으로 완성된다. 선왕 이홍위 역의 박지훈과 광천골 촌장 엄흥도 역의 유해진. 이 이질적인 듯 완벽한 조합이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던 어린 왕과, 당장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주의자 촌장. 두 사람은 권력의 위계가 아닌, '삶'이라는 처절한 바닥 위에서 비로소 대등하게 마주 선다.
박지훈은 〈약한 영웅〉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에너지에서 한 발 물러나, 무력감이 켜켜이 쌓인 단종의 고독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여기에 유해진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실리를 쫓는 계산적인 면모와 결국 인간에게로 기우는 뭉클한 변화를 이질감 없이 엮어낸다.
제목이 시사하듯, 영화는 왕의 몰락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이 사라진 폐허 위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택'을 응시한다. 우리가 몰랐던 단종의 시간, 그리고 그를 살게 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이야기, 이것이 〈왕과 사는 남자〉가 기다려지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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