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공정성을 감시하고 투자자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경제지 기자가 자신의 직업적 지위와 매체의 공신력을 사익 편취의 도구로 악용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전직 경제신문 출신 기자는 이투데이, 서울경제신문, 서울경제TV를 거치며 약 9년이라는 장기적인 세월 동안 특정 종목의 호재성 기사를 내보내기 직전 주식을 매수하고 보도 직후 주가가 급등하면 매도하는 속칭 '선행매매 수법'으로 112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언론사의 수익 사업인 기업설명회 대행 업무와 기사 작성 권한이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이해상충 구조를 여실히 드러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이를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로 규정하고 기자와 공범인 전직 증권사 직원을 구속 기소했으며, 이들이 취득한 고가 명품과 호텔 회원권 등 범죄 수익을 전액 추징 보전하는 등 엄정 대응에 나섰다.
범행에 나선 이 기자는 2017년부터 2025년 6월까지 무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대상이 된 종목만 1,058개, 작성된 기사는 2,074건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하나의 체계적인 비즈니스 모델처럼 작동했다.
수익과 윤리의 위험한 동거: 기업설명회 클럽과 바이라인 뒤에 숨은 그림자
이 기자의 범행이 가장 고도화된 시점은 서울경제TV에서 기업설명회 사업을 담당하던 시기였다. 그는 일반적인 취재 기자가 아니라 상장사들의 홍보와 투자자 대응 업무를 대행하는 사업 부서에서 근무했다. 여기서 그는 매체가 운영하는 이른바 IR클럽에 가입한 기업들의 호재성 정보를 기사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문제는 이 권한에 대한 내부 통제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이다.
서울경제TV 측은 "해당 기사들이 편집국을 거치는 정식 뉴스가 아니었으며, 외부 대행사를 통해 나가는 증권 정보 형태였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범행 기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사에 노출하지 않았다. 이투데이 재직 시절에는 본인의 실명을 내걸고 기사를 썼던 것과 달리, 서울경제TV에서는 온라인뉴스라는 보도자료 전용 공용 바이라인을 사용했다. 이는 기사의 책임 소재를 흐리는 동시에 자신의 선행매매 흔적을 지우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다고 한다.
이들 매체 관계자는 관리 감독의 부실을 시인했다. 회사에서는 특징주 같은 기사를 내보내선 안 된다고 했지만 범행 기자는 지적을 당했을 때 잠깐만 멈추고, 약속을 어기고 지속적으로 특징주 기사를 썼다고 한다.
특징주 기사는 단기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보이며, 이를 사업 담당자에게 맡긴 것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9년간의 완벽한 알리바이, 자본시장법 제178조가 무력화된 순간
이 기자가 자행한 선행매매의 기술적 핵심은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로 시가총액이 작고 거래량이 적어 적은 매수세로도 주가가 크게 출렁일 수 있는 코스닥 중소형주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증권사 출신인 공범은 차명 계좌를 관리하며 기사 송고 직전에 주식을 매집하고, 기사가 포털 사이트와 홈트레이딩시스템에 뿌려져 일반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순간 전량 매도하여 차익을 실현했다.
이들의 범행은 단순히 본인의 기사에 국한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기자는 친분이 있는 현직 기자로부터 보도 예정인 기사를 미리 전달받아 범행에 활용하기도 했다. 동업자 의식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정보 유출은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 현재 수사당국은 이들과 연루된 전현직 기자 20여 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언론계 내부에 만연한 정보 사유화와 윤리 의식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보여준다.
검찰은 2025년 12월 9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를 통해 범행 기자와 범행 증권사 출신 공범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 제기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피고인들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하여 박탈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정으로 넘겨진 이들의 혐의는 자본시장법 제178조가 금지하는 '사기적 부정거래'다. 언론의 기사라는 부정한 수단과 기교를 사용해 투자자들을 기망하고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점이 공소사실의 핵심이다.
특히 일당이 챙긴 112억 원은 수많은 개인 투자자의 손실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부당이득으로 구입한 수억 원대의 고가 명품 시계와 가방, 프리미엄 호텔 회원권, 그리고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분산해 둔 가상자산과 차명 주식 등을 대거 압수하고 추징 보전 조치했다. 이는 범죄로 얻은 이익은 반드시 환수된다는 원칙을 보여주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경제 저널리즘에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 언론사가 수익을 위해 기업 홍보 업무에 발을 들이고, 그 과정에서 기자에게 기사 작성이라는 칼자루까지 쥐여주는 구조는 언제든 제2, 제3의 범죄 기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기자협회 등 유관 단체들이 윤리강령을 개정하고 취재 정보를 이용한 주식 투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제재가 동반되지 않는 선언적 규정만으로는 독버섯처럼 퍼진 탐욕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폴 크루그먼은 시장의 효율성이 정보의 공정한 배분에서 온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경제 매체는 정보를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고 가공하여 사익의 수단으로 삼았다. 기자가 기사를 통해 112억 원을 벌어들이는 동안, 그 기사를 믿고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들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을 자처했던 이들이 스스로 포식자가 되어 시장의 생태계를 파괴한 이번 사건은, 언론의 자유가 책임과 윤리라는 토양 위에 있지 않을 때 얼마나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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