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시장이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다. 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이라는 전례 없는 확장적 재정 지출 계획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터의 안정을 지탱하는 고용 안전망의 무게추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무거워졌다. 고용노동부 소관 예산은 올해 본예산 대비 2조 3,309억 원(6.6%) 증가한 37조 6,761억 원으로 최종 의결되었으며, 이는 정부가 표방한 안전, 공정, 행복 일터라는 3대 혁신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공격적 투자의 결과물이다.
이 방대한 노동 예산의 핵심 항목은 바로 구직급여(실업급여)다. 2026년도 구직급여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본예산 기준 11조 원을 돌파한 11조 5,376억 원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단순히 경기 침체에 대비한 지출 확대를 넘어, 한국의 고용 보험 체계가 맞닥뜨린 구조적 변화와 최저임금 연동 제도의 모순을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적인 지표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의 파고
2026년 고용 예산의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는 실업급여 상한액의 인상이다. 정부는 내년도 구직급여 상한액을 1일 6만 8,100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2019년 이후 6만 6,000원으로 동결되었던 상한액이 6년 만에 3.18% 인상된 것이다. 이 조치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320원으로 오르면서 발생하는 하한액과 상한액의 역전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현행법상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에 연동된다. 내년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하한액은 1일 6만 6,048원이 되는데, 이는 기존 상한액인 6만 6,000원보다 높은 수치다. 실업급여를 많이 받는 사람보다 적게 받는 사람의 기준선이 더 높아지는 기현상을 막기 위해 상한액을 억지로 끌어올려야만 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 역시 하루 6만 6,048원, 월 기준 약 198만 원 선까지 상향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향 조정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거센 논쟁을 불렀다. 국민의힘 등 야당 측 의원들은 실업급여 수령액이 세후 최저임금보다 많아지는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 현상'을 지적하며, 근로 의욕 저하와 고용보험기금의 건전성 악화를 우려했다.샤워실의 바보 현상이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이 사용한 비유로, 정부의 섣부른 경제 정책 개입이 경기 변동을 더 키운다는 경고를 의미한다. 샤워실에서 물 온도를 급히 뜨겁게 틀었다가 너무 더워 찬물로 바꾸는 반복적인 실수를 정부 정책에 비유한 표현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은 고물가 시대에 실직자의 최소 생계 보장을 위해 상한액 인상은 불가피하며, 오히려 구인 촉진 수당을 5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인상하여 재취업을 독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격돌: 기금 고갈과 안전망 사이의 줄타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는 고용보험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날 선 공방이 오갔다. 2026년 고용보험 지출 규모는 전년 대비 6,723억 원(3.8%) 늘어난 18조 4,789억 원에 달한다. 특히 실업급여 지급 대상자가 약 163만 명으로 예상되면서, 기금 적립금 고갈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 의결 후 이번 예산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정 시한 내 의결해 주신 뜻깊은 예산이라며, 국민주권 정부의 국정과제를 본격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핵심 예산이 현장에 빠르게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출 효율화를 통해 재정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피력했다.
그러나 심의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인공지능 기반 인재 양성이나 일·가정 양립 지원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고용보험기금의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한 일반회계 전입금 확충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고용보험법상 모성보호 비용 등은 사회 분담 원칙에 따라 정부의 일반회계 전입금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그 비중이 여전히 노동자와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여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 등은 기금의 방만한 운영을 막기 위한 제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복 수급자에 대한 급여 감액 등 실업급여 제도 자체의 구조조정을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거짓 구인광고 피해 예방을 위한 고용서비스 모니터링 등 민생 밀착형 사업 24개에서 836억 원을 증액한 반면, 인공지능 공동훈련센터 등 사업 타당성이 부족한 10개 사업에서는 232억 원을 삭감하는 조정을 거쳐 최종 예산안을 확정했다.
4.5일제와 산재 예방의 결합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축은 단순히 노는 자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예산의 결합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고용부 예산 중 산재보험 지출이 10조 4,506억 원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하며 고용 보험과 함께 양대 안전망을 구축했다. 특히 산재보험 급여는 8조 1,463억 원으로 42만 명에게 지급될 예정이며, 산재병원 지원 예산도 1,228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 지원과 산재 예방 등 안전 일터 조성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실업급여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일자리 자체의 질을 높이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여 이직률을 낮추어야 한다는 노동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한다. 온열질환 예방 장비 지원 사업에 280억 원을 편성하고 안전 보건 관리 체계 컨설팅 예산을 820억 원으로 증액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근로감독관 2,000명을 증원하고 산재 예방에 5조 5,000억 원을 편성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굳건히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실업급여라는 사후적 보상 체계를 넘어, 사고와 실직을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적 보호 체계로 재정 투입의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결국 11.5조 원에 달하는 구직급여 예산은 한국 사회가 지불해야 할 고용 비용의 현재 주소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동적인 연동 지출과 고용 보험 가입자 수 확대라는 외형적 팽창 속에서, 재정의 효율성과 안전망의 두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2026년 노동 예산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국회의 비판적 견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 집행의 첫발을 뗐다. 728조 원의 거대한 예산 중에서 구직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실직이라는 삶의 위기 앞에 선 163만 명의 국민에게 국가가 내미는 최소한의 손길이자, 동시에 차세대 세대에게 넘겨질 재정적 부담의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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